“죽어서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땅이 있으니까.”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지 60년을 훌쩍 넘었는데도 이동표(87) 화가는 ‘그 땅’이 그립다. 대표적인 실향민 화가로 꼽히는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 33점을 모은 ‘달에 비친’ 전을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고 있다.
황해도 출신인 화가는 해주예술전문학교 미술과에 입학해 지방에서 창작 실습을 하던 중에 전쟁을 맞았고, 이후 부산으로 내려왔다. 혈혈단신으로 남한에 정착한 그는 미군 수송 부대에서 초상화가로 근무하다 국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출판사와 비료공장, 광고일로 생계를 잇다 나이 마흔이 돼서야 비로소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그가 환갑을 눈앞에 두었던 1990년부터 최근까지 약 30년에 걸쳐 그린 작품들로 구성된다.
어두운 잿빛 일색이었던 그의 그림은 통일을 꿈꾸면서 밝아졌다. 붉고 푸른 강렬한 색채를 사용해 굵은 선으로 통일을 외치는 군중을 그렸다. 그림 속 군중들은 두 손을 쭉 뻗고 ‘고향 가자’를 외치는 듯 해맑게 웃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그림에 ‘다 함께 모여 옛집 찾아가세’ 등의 구호도 썼다.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에 글도 넣게 되고, 색도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작가는 한때 ‘어머니만 그리는 작가’로 소개될 만큼 어머니를 화폭에 많이 담았다.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이번 전시 작품 절반 이상(15점)이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자마자 출산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그립다”라며 “고향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여서 많이 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작가는 최근 무르익는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에 “희망적이지만 두고 봐야 한다”며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국내 화단에 남은, 몇 안 되는 실향민 작가 중 한 명인 그는 “그 땅에 갈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염원했다. 전시는 12월2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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