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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핵개발 저지’ 노르웨이 저항군 뢴느베르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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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핵개발 저지’ 노르웨이 저항군 뢴느베르그 별세

입력
2018.10.23 16:52
수정
2018.10.23 18:41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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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25일, 요아킴 뢴느베르그가 영국의회 상원 위에 걸려있던 영국 국기를 수여 받아 들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2013년 4월25일, 요아킴 뢴느베르그가 영국의회 상원 위에 걸려있던 영국 국기를 수여 받아 들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한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출신 요아킴 뢴느베르그가 2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9세. 뢴느베르그는 1943년 노르웨이 텔레마크주 리우칸의 중수(重水) 생산시설을 파괴하는 ‘거너사이드(Gunnerside) 작전’을 이끌었다.

“텔레마크 요새의 영웅들”이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뢴느베르그의 거너사이드 작전은 세계 2차 대전의 가장 성공적인 잠입작전 중 하나로 꼽힌다. 비료 생산을 위한 질소 정제 용도로 건설 된 베모르크 발전소는 1934년부터 중수 생산을 병행했다. 중수는 핵무기의 주재료인 플루토늄 제작에 쓰이는 대표적인 감속재다. 베모르크 발전소는 당시 유럽 유일의 중수생산시설이었다. 독일은 1940년 노르웨이를 점령하며 베모르크 발전소를 손에 넣었다.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염려한 영국은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와 협력해 시설을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1943년 2월 륀느베르그를 필두로 한 6인의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작전을 개시했다.

뢴느베르그의 6인대는 시설로부터 60여㎞ 떨어진 곳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4인의 대원들과 합류해 작전 침투를 준비했다. 뢴느베르그는 대원들을 이끌고 수 십 ㎞의 설원을 헤쳐 시설에 도착했다. 험난한 협곡 사이에 위치한 시설로 이어지는 ‘길’은 삼엄한 경계 속의 다리 한 곳뿐이었다. 침투조는 경계를 피해 수직의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시설을 주시하며 기회를 노리던 뢴느베르그는 27일에서 28일로 넘어가는 밤에 침투를 개시했다. 입구 근처의 근무병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절단기로 자물쇠를 끊고 시설에 잠입했다.

중수 생산 설비와 보관탱크를 지키는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정보원으로부터 ‘다른 입구’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던 뢴느베르그는 전선ㆍ수도 배관을 타고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이후의 작전은 신속히 진행됐다. 2분짜리 도화선을 30초로 짧게 잘라 점화한 뢴느베르그는 대원들을 이끌고 시설을 탈출했다. 이날 뢴느베르그는 500㎏의 중수와 중수생산설비를 파괴했다.

뢴느베르그는 거너사이드 작전의 성공으로 노르웨이 최고등급의 무공훈장을 비롯해 노르웨이, 영국,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훈장을 받았다. 거너사이드 작전 이후에도 뢴느베르그는 독일군을 상대로 잠입작전을 이어갔다. 독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필드페어 작전이 대표적이다.

전후 1948년부터 1988년까지 노르웨이의 국영방송 NRK에 몸을 담은 뢴느베르그는 은퇴 후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쟁·군사 강연을 진행했다. 방송과 강연을 통해 뢴느베르그는 시민드을 대상으로 전쟁의 참혹성과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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