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10년간 주식을 빌려주고 벌어들인 수수료 수익이 1,500억원도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적 연기금의 ‘주식 대여 장사’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국민연금은 이날 “더 이상 주식 대여를 하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23일 한국일보가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한국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가 지난 2008년부터 올해 8월말까지 10년간 빌려준 주식의 총 규모는 42조193억원(국민연금 37조9,982억원, 우본 4조211억원)이다. 이 기간 국민연금은 이러한 주식 대여 수수료로 1,425억원, 우본은 87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들 연기금은 정부가 금융위기 당시 주가하락을 막기 위해 공매도를 막은 2009년을 제외하면 매년 주식을 빌려주고 연 평균 151억원(국민연금 142억, 우본 8억7,000만원)의 수수료 수익을 올렸다.
국민연금과 우본이 주식을 대여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연기금에 주식 대여를 허용한 것도 갖고 있는 주식을 가만히 놀려두기보단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 이익을 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들 연기금을 바라보는 개인투자자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분노로 가득하다. 국민의 노후 종잣돈으로 건강한 주식 투자를 해 수익을 거둬야 할 공적 연기금이 되레 공매도 세력에 실탄(주식)을 대주는 전당포 역할을 하며 ‘주식 대여 장사’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다른 연기금인 사학연금, 군인연금, 공무원연금은 주식을 대여하지 않고 있다.
연기금이 빌려준 주식이 실제로 공매도에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기관투자자가 빌린 주식은 다시 대여하거나 다른 증권결제에 쓰이는 등 사용처가 다양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주식대여 시기 등을 감안할 때 적잖은 주식이 공매도에 활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한미약품 미공개 정보 유출 사건 당시 공시가 나기 전 공매도 물량 상당수를 국민연금이 빌려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인 바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민연금은 주식 대여를 중단하라’는 글엔 이미 수만명이 서명했다. 결국 국민연금은 이날 열린 국감에서 앞으로 국내주식 대여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민연금은 주식 대여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분석한 뒤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주식대차 시장에서 발을 뺀다고 해서 당장 공매도 자체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지난 1~8월 대차 시장에서 주식을 가장 많이 빌려준 주체는 외국법인(117조)으로 국내 연기금(4조3,000억원)의 27배에 달한다. 국내 연기금이 대차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로 미미하다. 손혁 계명대 교수는 “국민연금의 이번 조치가 의외긴 하지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공매도 불신을 일으키는 불법 거래들을 차단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김 의원은 “지금 규정에선 빌린 주식을 무한히 재대차 하는 게 가능해 실제 대차된 주식총량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는 만큼 당국이 이 문제를 포함해 지금보다 시장을 투명하게 바꿀 수 있는 근본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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