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비가 들이치는 날, 누가 건물을 돌아다니며 침수에 대비하고, 불이 나면 화재를 진압하고, 도둑이 들면 도둑을 잡습니까? 폐쇄회로(CC)TV가 아무리 최첨단이라고 한들 기계일 뿐 판단하고 처리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비가 쏟아진 23일 오전. 우비를 입은 연세대 소속 경비ㆍ미화노동자 150여명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 앞에서 “대학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학내 경비 축소를 중단하라”고 외쳤다. 학내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이 결국 근로시간 단축→임금 삭감→일자리 박탈로 이어지고 있다는 절박한 심정을 호소한 것이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일 연세대 경비용역업체는 ‘밤 10시30분 퇴근 지시’가 담긴 새로운 근무지침을 통보했다. 야간 경비를 무인 방범체제로 바꾼다는 지난달 14일 연세대 발표에 따른 후속 조치로 경비시간이 준 만큼 임금 삭감도 예정돼 있다. 노조는 한발 더 나가 무인화를 앞세운 학교의 인력 감축(구조조정) 계획을 의심하고 있다. 반면 학교는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경비노동자들의 정년을 고려해 무인 경비시스템을 2015년 완비하고도 도입을 지금까지 미뤘다”는 것이다.
상아탑이 무인화 몸살을 앓고 있다. 앞다퉈 도입하는 기업들의 행보를 감안하면 대학의 무인화 움직임이 빠르다고 볼 수는 없다. 비용 절감, 효율성, 이용자 편의 등을 추구하는 학교 방침도 중요하지만, 아직 인문학과 휴머니즘이 숨쉬는 캠퍼스 분위기와 취업전선에서 분투하는 청년들의 지지 역시 공존하다 보니 무인화 도입에 따른 갈등이 도드라져 보인다.
아무래도 대체가 상대적으로 쉬운 경비시스템이 먼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울대도 지난해 5월 인문대, 사범대, 자연과학대 건물 25개 동에 CCTV와 센서를 통해 중앙관제센터에서 경비를 총괄하는 ‘통합경비시스템’을 도입했다. 무인 시스템이 도입된 건물의 기존 경비인력은 미화원 등으로 보직 변경하거나 공석이 생긴 곳에 재배치돼 인력 감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퇴직으로 인한 결원은 차차 무인 시스템으로 대체, 자연스럽게 인력을 줄인다는 입장이다. 서울여대는 무인 경비시스템을 도입하며 경비원 일부를 감원했다.
인력 감축을 학생들 힘으로 막아낸 곳도 있다. 숙명여대의 경우 2016년 3월 무인 경비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경비노동자들이 쫓겨날 위기에 몰렸지만 학생들의 반발에 결국 해고가 철회됐다. 물론 거대한 흐름인 무인화 자체를 미루진 못했다.
대학 내 무인화는 차츰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성균관대는 7월 중순부터 도서관 내 사서가 맡던 대출반납 데스크 운영을 중지하고 무인 기계인 ‘셀프대출반납기’를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대출과 반납을 돕던 고용 사서들은 다른 업무를 맡게 됐고 근로장학생 일부는 그만뒀다. 전남대는 올해 교내 주차요금정산소에 무인 정산시스템을 도입했다. 요즘 대학 구내식당의 주문 시스템은 무인화 또는 자동화가 더 친숙할 정도다. 다만 무인화 바람이 학내 갈등의 새로운 축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무인화 및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은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라면서도 “학내 구성원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고 ‘일자리 나누기’ 같은 방식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일자리의 양은 보전하면서 시간을 조정하는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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