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 3개월째. 두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에 다니는 워킹맘의 고달픔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요즈음 일을 핑계로 난생 처음 심리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주택가. 오래된 철물점과 방앗간, 작은 슈퍼를 지나 심리상담 홈페이지에 표시된 주소의 빌라 입구를 찾았다. 입구에도 아무런 표지가 없어 결국 전화를 하고서야 301호 벨을 누를 수 있었다. 긴장은 문을 열고 다소 풀렸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로마 향이 났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엌이 딸린 거실에 방 두 칸으로 구성된 66㎡의 공간은 친구의 자취방처럼 아늑했다. 깔개가 덮인 소파가 있고, 책장에는 가벼운 감성 에세이 책과 잡지가 꽂혀 있다. 용기를 돋우는 글귀와 포스터가 벽면에 붙어 있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다과도 놓여 있다.
첫 상담 전에 간단한 면담지를 작성해야 한다. 이름과 성별, 가족관계, 직업 등 개인정보를 적고, 상담받고 싶은 항목으로는 스트레스와 정서문제, 자녀문제를 체크했다. 선택한 항목에 불편 정도는 ‘보통’으로 적었다. 이어 현재 겪고 있는 문제 때문에 실생활에 얼마나 지장을 받는지 여부도 체크했다. 가령 최근 2주 내 일 또는 여가활동을 하는 데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거나, 피곤하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 등이다. 2주 이상 거의 매일 우울한 기분, 흥미 상실 등으로 일상생활이나 직업상 곤란을 겪는 경우를 의학적으로 우울증으로 진단한다. 육아로 인해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쫓기는 듯한 일상에 종종 불안함을 느낀 적이 3, 4번은 된다고 썼다. 설문을 작성한 뒤 방 안으로 안내를 받았다. 보통 예약제로 운영하니 상담을 받는 동안 다른 이가 밖에서 기다리는 경우는 없다. 방 안에는 체크무늬 테이블보를 덮은 둥그스름한 테이블이 중간에 있고, 휴지와 사탕 접시, 담요 등이 준비돼 있다. 대화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인지 다른 물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상담가와 인사하고 앉자 어색한 침묵의 순간이 잠깐 흘렀다. 속으로 ‘난 멀쩡해서 상담 안 받아도 되는 게 아닐까, 무슨 얘길 하지’라고 생각했다. 상담가가 먼저 “스트레스가 많은 편인가 보군요”라고 말문을 뗐다. 업무 스트레스도 심하고, 아직 엄마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잘 돌봐주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고 짧게 대답했다. 초면이라 약간의 경계심이 들어 별것 아니라는 듯 “다들 하는 고민이죠”라고 덧붙였다. 상담가는 “다른 분들도 많이 힘들어하는 시기죠. 회사가 일이 많은 곳인가 봐요”라며 말을 붙였다. 출퇴근이 불규칙적이고, 챙길 일도 많다는 등 회사에 대한 불만을 시작으로 육아, 가족관계, 성장배경 등 ‘나’를 둘러싼 얘기들로 대화의 폭이 넓어졌다. 주로 내가 말하고, 그가 들었다. 상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따스한 눈빛을 보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얘기에 공감했다. 중간중간 ‘가족과 얘기를 해보셨나요’ ‘힘들 때는 어떻게 하세요’라고 질문했다.
이렇게 내 문제를 집중해서 생각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어느새 ‘나의 역사’를 술술 얘기하고 있었다. 상담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가족, 회사 선후배 등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이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는 꾹꾹 눌러왔던 속내를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상담가는 “모든 사람들은 도움을 주고 받는데, 일찍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성향이 강해 다른 이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다”며 “다른 사람에게 좀 기대도 괜찮다”고 위로했다.
상담은 50분간 지속됐다. 속마음을 훤히 들킨 듯 민망했지만 얘기를 들어준 생면부지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한 번의 상담으로 스트레스를 없앨 순 없다. 다만 아무도 몰라줬던 답답함과 속상함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상담은 기자, 엄마, 아내, 딸, 며느리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인간으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문턱 낮아진 심리상담… 심리 카페 열풍
심리상담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굳이 병원에 갈 정도의 정신적인 문제가 없어도 일상적인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 정신질환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와 상담한 경우가 전체의 9.6%로 5년 전(7.0%)에 비해 2.6%포인트 증가했다. 미국(43.1%), 캐나다(46.5%), 호주(34.9%) 등에 비하면 턱없이 낮지만 앞으로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심리상담소 에브리마인드의 이서현 대표는 “우울증을 앓거나 정신질환이 없어도 누구나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며 “그 방법 중 하나로 심리 상담이 각광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찾는 상담자 수는 일주일에 40여명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열 당시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주로 일상에서 다른 이들과 관계 맺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문을 두드린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곳을 찾은 김혜미(가명ㆍ32세)씨는 “친구나 가족은 말해도 ‘어쩌겠어, 참고 살아야지’라고 하는데, 상담에서는 ‘내가 어떤지, 그래서 남편과 왜 틀어졌는지’를 같이 생각해준다”며 “나를 이해받고, 온전히 내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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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가볍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심리 카페도 급증하는 추세다. 카페라는 친근한 공간을 활용해 심리 상담을 해준다. 커피 등 음료를 주문하면 심리 검사를 받을 수 있고, 검사결과에 맞춰 상담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들이 20분~1시간 상담해준다. 검사 종류에 따라 비용은 1만5,000~6만원. 2010년 2월 인천에 문을 연 카페테라피는 국내 첫 심리 카페다. 이배영 카페테라피 대표는 “사람들이 병원이나 전문기관에서 상담받는 걸 꺼려하는 걸 보고 좀더 편안하게 상담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카페를 열었다”며 “간단한 심리 검사만으로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 문을 연 심리 카페 멘토도 현재 전국에 12개 지점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다. 김화숙 멘토 대표는 “연애, 취업, 진로 등에 고민이 많은 젊은 층의 상담 수요가 많다”며 “과학적인 검사로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분석해 적극적으로 현재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인들의 관계상담이 70%... 더 나은 삶을 추구
심리 카페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젊은 연인이다. 과거 점집이나 사주 카페에서 궁합을 맞춰 보던 젊은 연인들이 최근에는 심리 카페에서 각자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는 것. 홍익대 앞 ‘멘토’ 안 벽에는 젊은 연인들이 상담 후 남긴 후기를 적은 메모가 빼곡히 붙어 있다. 교제 기념일에 방문한 연인들은 ‘서로를 알게 돼 너무 좋았다’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됐다’ ‘상대에게 더 잘해야겠다’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남자친구와 심리 카페를 방문한 이성은(21)씨는 “궁합처럼 생년월일이나 기운 등 타고난 것이 아닌 과학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생각과 성격, 취향을 분석하는 점이 기존 사주 카페와 다른 점”이라며 “내 행동이 뭐가 잘못됐는지, 왜 많이 싸웠는지 알게 돼 앞으로 더 나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씨뿐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 숱한 연인들은 심리상담으로 현재보다 더 행복해지는 관계를 꿈꾼다.
최근에는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 단체나 회식을 겸해 상담을 신청하는 직장인 등 단체 모임도 늘고 있다. 직장상사는 직원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주기 위해, 직원들은 자신의 일이 잘 맞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카페를 찾는다고 했다. 김화숙 멘토 대표는 “과거와 달리 수평적인 직장문화가 확산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자리를 필요로 한다”며 “심리 검사를 통해 직장 내 구성원들끼리 소통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멘토와 카페테라피에 따르면 카페를 찾는 이들의 60~70%가 연인이며, 20~30%가 직장인, 나머지는 부모와 자녀 등 가족관계다.
심리 카페는 병원 치료로 이어지기 전에 병을 예방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자부한다. 김화숙 대표는 “현대인들 대부분이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산다”며 “일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닐지라도 상담은 현재보다 더 행복해지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의 시선도 있다. 제대로 된 검사 방법과 전문가의 상담이 아니면 자칫 상담이 독이 될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취업난이 심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과 현실의 간극이 크다 보니 젊은층들이 심리 상담을 많이 받고 있다”며 “하지만 비전문적인 상담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멀쩡한 사람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진단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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