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대부업체ㆍ사채 등
지난해 말 기준 미등록 대부업체나 사채와 같은 불법 사금융에서 나간 전체 대출잔액 규모 6조8,000억원에 달하며 전체 국민의 1.3%인 52만명이 불법 사금융을 이용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 중 1만명은 연 66%가 넘는 고금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용자의 8.9%가 불법 추심을 경험했지만 이들 가운데 10명 중 6명은 보복 우려 등으로 신고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이런 내용이 담긴 ‘2017년 불법 사금융시장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실태조사를 통해 불법 사금융 시장에 대한 시계열 통계를 구축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법정최고금리를 임기 중 20%까지 낮추기로 했는데, 이 여파로 저신용자들이 대거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만큼 불법 사금융시장의 현황을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만 19세 이상 79세 이하 국민 5,000명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말 기준 불법 사금융 대출잔액 규모는 6조8,000억원으로 추정됐다. 현재 당국의 감독을 받는 등록 대부업체의 대출잔액이 16조7,000억원(78만명 이용) 수준임을 감안할 때 불법 대부시장 규모가 합법 시장의 40% 수준에 달하는 것이다. 불법 사금융과 등록 대부업체를 동시에 이용 중인 차주는 4만9,000명으로 추정됐는데, 이를 볼 때 두 시장은 서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불법 사금융은 당국의 감시를 받지 않기 때문에 법으로 정한 최고금리 수준을 훨씬 웃도는 금리를 차주에게 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이번 조사 결과 불법 사금융 금리는 10~120% 수준이었고 조사 당시 기준 법정최고금리(연 27.9%)를 초과한 경우는 36.6%에 달했다. 연 66% 초과 초고금리 이용자 비중은 전체의 2%였는데, 이를 전국민으로 환산하면 1만명 수준이다. 연 20% 이하 대출비중은 26.8%였다. 이는 지인 등 지역 내 제한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 담보 취급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불법 사금융을 주로 이용하는 이의 특징을 꼽으면 월소득 200만~300만원대(20.9%), 40~60대(80.5%), 남성(62.5%)다. 이를 종합하면 중년 남성이 사업자금(39.5%), 생활자금(34.4%)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른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불법 사금융을 썼다는 이도 14.2%에 달했다. 특히 60대의 49.5%는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 중 25.7%는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불법 사금융은 저소득층만 이용할 거 같지만 소득별 분포도를 보면 월소득 6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도 17.8%에 달했다. 돈을 많이 벌긴 해도 여러 곳에 빚을 많이 지는 등 재무구조가 취약한 고소득자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 사금융은 차주의 50%가 단기ㆍ만기일시상환 대출을 이용하고 있다. 만기가 자주 돌아오는 만큼 당연히 상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데 10명 중 4명(36.6%)는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 중 5.1%는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특히 불법 사금융 차주의 8.9%는 불법채권 추심을 경험했지만 64.9%는 신고 의사가 없다고 응답했다. 보복 우려, 대체 자금을 마련하기가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불법 사금융 이용자의 60%는 법정최고금리가 연초 27.9%에서 24%로 내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는 국민 전체 평균 31.2%의 약 2배 수준이다. 또 불법 사금융 이용자의 75.1%는 정부의 채무조정 제도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합법 금융기관이 아닌 불법 사금융 시장에 발을 들인 건 그만큼 저신용자를 위한 정부의 정책상품을 실제 수요자가 이용하기엔 여러 제약이 따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법정최고금리가 추가로 내려가면 불법 사금융 이용자들이 더 늘어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재 대부업체들은 높은 손해율을 금리로 상쇄하는 식으로 영업하고 있는데, 앞으론 손해율을 낮추기 위해 대출심사를 강화하면 그만큼 저신용자들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게 대부업체들의 주장이다. 이날 정부도 향후 시장여건이 나빠지면 등록대부 이용자가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불법 사금융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정부 정책을 몰라 불법 사금융으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반기 중 서민금융 제도 개편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