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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해적보다, 고래잡이보다 나쁜 놈

입력
2018.10.23 10:3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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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악마의 소굴이라고 하면 딱 맞을 해안을 이루고 있는, 암울하기 그지없는 부서진 검은 용암더미 땅에 상륙했다. 우리가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허둥지둥 나아갈 때 수많은 게와 추한 이구아나들이 사방에서 활동을 개시했다.” 선장이 말했다. 배를 타고 항해하는 자연학자의 느낌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지옥 중에서 조금 나은 부분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모습과 비슷했다.”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서 나온 ‘다윈 평전’의 한 부분이다. 1,300쪽에 달하는 지독하게 두꺼운 책에서 희한하게도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갈라파고스 제도 이야기다. 푸른발얼가니새와 거대육지거북이 사는 섬. 펠리컨이 생선가게에 마실가고 바다사자가 벤치에서 낮잠 자는 섬. 그랜트 박사 부부가 핀치의 부리를 연구하는 섬. 마치 파라다이스로 여겨지는 곳인데 정작 갈라파고스를 세상에 널리 알린 찰스 다윈과 비글호 선장은 갈라파고스에 대해 악담을 퍼부었다.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가봤다. 파나마운하를 방어하기 위해 미군이 건설한 비행장에 내리는 순간 벌써 답답했다. ‘아! 피츠로이와 다윈이 본 게 바로 이것이구나!’ 사람이 살기에는 척박한 곳이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다르다.

갈라파고스는 13개의 큰 섬과 100여 개의 작은 섬과 암초로 된 제도다. 다윈은 “이 지글지글 타는 뜨거운 제도는 온갖 파충류의 낙원”이라고 했다. ‘역겨울 만큼 못생긴’ 수많은 이구아나들이 해안의 바위에서 낮잠을 자기에는 완벽한 환경이다. 이구아나만 많은 게 아니다. 바다거북들이 만을 미끌어지듯 헤엄치며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쑥 내밀고, 내륙의 거대육지거북이 물이 고인 웅덩이 주변으로 모여드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은 안장(鞍裝)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이곳에 사는 육지거북의 모습이 마치 말안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갈라파고스는 사람이 살기에 절대 좋은 곳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람이 못 살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갈라파고스는 해적의 은신처 역할을 하다가 포경선의 기지가 되었으며 죄수들의 수용소가 되었다. 포식자를 경험하지 못했던 동물들은 사람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사람들은 모피를 팔기 위해 물개를 사냥하고 항해 중 먹을 신선한 육류를 얻기 위해 육지거북을 포획했다. 태평양을 건너는 배들은 갈라파고스에 들러 수백 마리의 육지거북을 잡아갔다. 해적보다 정착민이 데려온 소, 염소, 개와 덩달아 따라온 쥐의 피해가 더 컸다. 외래 동물은 갈라파고스 생물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수십만 마리에 달하던 육지거북이 1974년에는 1만 마리만 남았다.

그나마 사람에게는 ‘반성’할 줄 아는 심성과 ‘복원’할 줄 아는 기술이라는 장점이 있다. 다행이다. 산타크루즈 섬의 찰스 다윈 연구소에서는 육지거북을 비롯한 갈라파고스에 사는 온갖 동식물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고, 가장 큰 섬인 이사벨라 섬에는 거대거북짝짓기센터가 있다. 여기에서 육지거북을 복원하고 있다.

수컷이 조금 더 크고 (생식기 역할을 하는) 꼬리가 훨씬 길다. 또 수컷의 복갑(아래쪽 껍질)은 살짝 오목해서 암컷의 등에 올라타기 좋게 되어 있다. 그래도 짝짓기가 쉽지는 않다. 나는 운좋게 그 장면을 목격했다. 수십 센티미터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는다. 이걸 그대로 놔두면 생존율이 낮다. 그래서 그 알을 부화기로 옮겨 온다. 이때 알에 표시를 해서 그 위치와 모양이 바뀌지 않게 한다. 자연에서는 육지거북의 알둥지를 덮고 있는 흙이 금방 단단해진다. 160일 후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단단하게 덮인 흙을 뚫고 나오는 데 무려 한 달이 걸린다. 그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한다. 부화기에서 깨어난 새끼에게도 마찬가지로 한 달 동안 물과 먹이를 주지 않는다. 최대한 자연의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살아남은 육지거북은 드디어 길고 느린 삶을 시작하게 된다.

섬마다 살고 있는 거북의 등갑 모양이 다르다. 종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저기 섞어 놓았다. 잡종이 생겼고 어떤 종은 멸종되었다. 하지만 아직 열두 종이 남아 있다. 짝짓기센터 과학자들은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노력에 따라 아직까지는 육지거북을 보존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60년에는 단 열네 마리만 남았던 에스파뇰라 섬에는 현재 1,100마리 이상이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짝짓기센터에서 123마리의 새끼를 도둑맞았다. 하필 가장 멸종위기에 처한 두 종이었다. 키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도둑이 있는 거다. 굳이 자기 집 정원에서 갈라파고스 거북을 키우고 싶은 그 사람이 거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태계에는 방해만 되는 사람이다. 인간은 생태계에 고슴도치 같은 존재다. 좋아한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래야 나란히 갈 수 있다. 갈라파고스 거북은 갈라파고스에 있으면 된다. 자기 집 마당이나 동물원이 아니라.

21세기에 거북 도둑이라니… 해적보다, 고래잡이보다 나쁜 놈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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