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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 “‘완벽한 타인’ 찍으며 결혼 생각에서 더 멀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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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 “‘완벽한 타인’ 찍으며 결혼 생각에서 더 멀어져”

입력
2018.10.23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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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으로 오랜만에 본업에 복귀한 이서진은 “다작은 체력이 달려서 욕심 내지 않는다”고 웃으면서 “새로운 작품을 만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현재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완벽한 타인’으로 오랜만에 본업에 복귀한 이서진은 “다작은 체력이 달려서 욕심 내지 않는다”고 웃으면서 “새로운 작품을 만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현재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tvN ‘꽃보다 할배’와 ‘삼시세끼’ ‘윤식당’ 같은 예능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더니 영화 촬영은 도리어 예능처럼 즐긴 모양이다. 캐릭터에 본래 모습이 투영된 것 아니냐는 농반진반 오해를 사는 걸 보면 말이다. 함께 호흡을 맞춘 동료 배우 조진웅도 짓궂은 농담을 했단다. “20년 전에 이 영화 시나리오를 미리 받은 것 아니냐, 이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니냐.”

‘완벽한 타인’(31일 개봉)을 보고 나면 배우 이서진(47)에 대한 조진웅의 평가에 ‘공감’을 보태고 싶어진다. 그만큼 연기가 자연스럽고 캐릭터에 잘 녹아들었다는 얘기다. 1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서진은 “캐릭터를 나답게 표현했을 뿐 실제 성격은 능청스럽지 않다”고 웃으면서 “다만 크게 부담되거나 어려운 역할은 아니어서 편하게 연기했다”고 말했다.

‘완벽한 타인’은 오랜만에 부부동반 집들이 모임을 가진 친구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통화와 문자 메시지, 이메일을 공유하는 게임을 하면서 밝혀지는 비밀을 유쾌하게 그린다. 이서진은 나이 어린 아내와 알콩달콩 신혼을 즐기고 있는 레스토랑 사장 준모를 연기한다. 자신감 넘치고 위트 있는 성격이라 늘 이성이 따르는 ‘꽃중년’ 바람둥이이기도 하다.

“극 중 조진웅씨와 유해진씨는 각각 의사,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있고, 아이들도 두고 있어요. 저에게는 그런 직업과 가정 환경을 가진 인물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준모 역이 눈에 들어왔죠. 그렇게 심각하거나 진지한 인물이 아니라서 연기할 때도 무척 재미있었어요. 극에 숨통을 터 주는 게 저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준모를 최대한 가볍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대기업 실장님’ 캐릭터로 대표되는 ‘순정파 엘리트’ 이미지는 이번 영화에서 싹 지워졌다. 그런데 별로 아쉽거나 서운하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반가웠다. “사실 로맨틱한 캐릭터를 싫어해요. 출연 제안은 많이 받았지만, 제가 그렇게 살갑거나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라서요(웃음). 그 캐릭터들이 조금 단조롭기도 했고요. 연기 변신을 위해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아니지만, 새로운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죠.”

실력파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호흡이 영화 ‘완벽한 타인’에 독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실력파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호흡이 영화 ‘완벽한 타인’에 독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집들이 만찬에서 벌어진 하룻밤 이야기라서, 배우들은 한 달간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옷차림으로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촬영했다.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때로 촬영인지 실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촬영이 끝나고도 만찬 테이블에서 주고 받는 대화 주제를 카메라 밖으로 계속 이어간 적도 많았다. 그렇게 발전된 아이디어들은 영화에 반영됐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한 달 내내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게 고욕이었어요. 먹는 장면에서 NG가 나면 진짜 큰일이죠. 저는 닭강정을 한 박스나 먹어야 했습니다(웃음)”

명태 회무침, 물곰탕, 아바이 순대 등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지는 식탁에는 사랑, 우정, 배신, 외로움 등 우리 삶의 속살들도 함께 올라온다. 아내와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각자의 비밀과 그 비밀이 탄로 나면서 단숨에 허물어지는 허약한 관계가 쓰디쓴 뒷맛을 남긴다. 이서진은 “재미있게 웃다가 문득 쓸쓸해지더라”며 “영화를 찍으면서 결혼 생각에서 더 멀어졌다”고 뜻밖의 부작용을 털어놓았다. “게다가 이제는 결혼 적령기도 훌쩍 넘겨서 체력이 달리네요. 일을 열심히 하면 사랑에 쏟는 에너지가 그만큼 줄어들더라고요. 저만의 생활 패턴이 깨지는 것도 내키지 않고요.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결혼이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아요.”

주인공 각자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는 중에도 평온하던 준모(오른쪽)는 마지막에 이르러 수습 불가능한 결정타를 날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주인공 각자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는 중에도 평온하던 준모(오른쪽)는 마지막에 이르러 수습 불가능한 결정타를 날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지만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를 시청한 노년 세대에게 최고의 사윗감으로 꼽힌다. 제작진에게 투덜거리면서도 티 내지 않고 꽃할배를 보살피는 그를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이서진은 “어르신들이 요즘 그렇게 저를 좋아하더라”며 보조개 웃음을 지었다. “방송에서 보셨다시피 나영석 PD에게 속아서 시작한 일이에요. 처음엔 여행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 촬영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방송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죠(웃음). 처음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주인공은 꽃할배 선생님들이고 저는 그저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뭘 좋아하시는지 아니까 챙겨 드리게 되고, ‘삼시세끼’에서 요리를 한 뒤로는 선생님들께 한식을 차려 드리고 싶더라고요. 제가 할 일이 점점 많아진 거죠.”

이제는 짐꾼 역할을 내려놓고 싶다는 속내도 내비친다. 그러고는 군복무 중인 옥택연을 후임으로 추천했다. 방송에서 늘 입에 달고 살던 얘기다. 그는 “내가 힘들어서 선생님을 제대로 못 모실까 봐 걱정돼서 그렇다”며 “선생님들이 새 짐꾼을 마음에 들어 하신다면 나를 잊으셔도 전혀 서운하지 않다”고 웃었다. 이서진의 가식 없고 소탈한 매력이 예능프로그램에 본 그대로였다. “15년 전엔 비호감이었는데 세상이 달라져서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똑같거든요.”

오랜만에 본업인 연기로 돌아왔으니 다작에도 욕심 낼 법한데 그는 역시나 한결같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보다 지금 하는 일을 꾸준히 잘하고 싶다”고 한다. “현재를 즐길 뿐 꼭 주연을 맡아야 한다는 마음도 진작에 내려놓았다”고도 했다. 새로 촬영을 시작하는 OCN 드라마 ‘트랩’도 그렇게 선택했다. MBC 드라마 ‘다모’와 영화 ‘완벽한 타인’까지 인연을 이어온 이재규 감독이 제작하는 작품이다. “이젠 서로 엉뚱한 얘기만 주고받아도 마음이 통해요. ‘다모’ 때만 해도 제가 까칠했어요. 나이 들어가면서 여유가 생기니까 촬영도 즐겁네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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