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관련 명예훼손 사건 1심 재판을 앞두고, 당시 청와대가 법원행정처에 ‘유죄 판례’를 전달하는 등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22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2015년 11월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대법원 판결을 참조하세요”라는 문자 메시지와 함께 명예훼손죄 ‘유죄 판례’를 보낸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 남편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기소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1심 재판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박 전 비서관은 판사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청와대와 행정처는 유죄나 무죄 판결하되 부적절성을 꾸짖는 방안 등을 놓고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그 즈음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던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사건을 맡은 1심 재판장에게 “인용된 풍문이 허위라는 사실이 판결 이유에 들어가야 한다”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정황, 행정처가 ‘선고 당일’ 판결 이유 낭독 내용을 사실상 ‘대본’ 형태로 미리 파악한 문건이 있다는 정황(한국일보 7월27일자 8면)도 포착했다. 이 문건에는 ‘가토 전 국장이 쓴 기사는 허위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판결서 이유에도 해당 보도의 허위성을 명백히 판시할 것으로 예정’이란 문구가 실렸고,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허위 보도한 것에 대해 재판부의 엄중한 질책이 있을 것’, ‘매서운 질타 및 경고 메시지 전달’이라고 적혀있다. ‘다만, 법리상 부득이하게 무죄 선고 예정’이라고 적힌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2월 17일 열린 선고공판은 ‘대본’ 문건과 판박이로 진행됐다.
임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선고 요지를 수정하라고 요구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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