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다품종 영화제의 시대

입력
2018.10.22 11:30
수정
2018.10.22 17:45
31면
0 0

지난 한 세대의 한국영화를 ‘문화’의 관점에서 돌아볼 때, 가장 큰 지각 변동을 일으킨 사건이라면 멀티플렉스의 확산과 영화제의 등장일 것이다. 전자가 산업 분야에서 시작해 관람 문화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왔다면, 후자는 ‘영화 축제’라는 형식을 통해 영화계 전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199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들은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한국영화를 세계 영화로 이끄는 통로 역할을 했다.

국제영화제의 등장은 어쩌면 운명적이었다.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한 이른바 ‘영화 마니아’ 문화는 1990년대 중반에 정점을 맞이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레오스 카락스, 왕자웨이 같은 동서고금의 시네아스트가 동시에 사랑받았고, 사설 시네마테크에선 비디오 대여점에서, 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이 열성 관객과 만났다. 이때 등장한 영화제는 음지에서 소비되던 영화들을 양지로 끌어올렸다. 가을의 부산 남포동은 영화에 취한 젊은이들의 해방구였고, 전 세계에서 찾아온 감독과 배우들은 그 열기에 감격했다.

다른 흐름도 있었다. 특정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국제영화제들이 다양한 영화들을 보다 많이 소개하는데 중점을 둔다면, 사회적 이슈를 내세운 영화제들도 등장했다. 여성, 인권, 환경, 퀴어, 장애인 등에 초점을 맞춘 영화제들은 우리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장이 되었다. 한편에선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독립영화, 음악영화, 단편영화, 실험영화, 뮤지컬 등 특정 장르나 형식의 영화들을 다루는 영화제들이 속속 등장했다. 바야흐로 영화제의 백화난만 시대가 열렸고, 한국은 100개가 넘는 영화제 보유국이 되었다. 영화제는 거대한 문화 산업이 된 것이다.

흥미로운 건, 최근 감지되는 영화제의 새로운 바람이다. 영화제는 삶 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사실 몇 년 되긴 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본격적인 시작일 것이다. 인근의 덕유산 국립공원과 연계된 이 영화제는 ‘산골’이라는 친근한 콘셉트를 영화제와 잘 융합시켰다. 영남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전문 산악인은 물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삶을 파고든 영화제들도 있다. 서울국제음식영화제나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등이다. 맛집 열풍이나 반려 동물에 대한 관심 급증 같은 현실의 트렌드를 영화제에 접목시킨 사례다.

그렇다면 2018년은 점점 미시적이며 일상적으로 향해 가는 영화제의 흐름에서 중요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여름에 동해안에서 열렸던 그랑블루 페스티벌은 서핑이나 캠핑 같은 스포츠와 레저 중심의, 영화 상영이 곁들여진 해변 축제였다. 최근에 열렸던 카라동물영화제나 11월에 열릴 예정인 고양이영화제는 모두 올해 시작한 신생 영화제들이다. 행사 기간은 짧지만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관객들에겐 꽤 관심이 가는 이벤트다. 10월 초에 열렸던 채식영화제나 11월에 열리는 제주드론필름페스티벌도 올해 첫해를 맞이하는, 과거엔 접하기 힘들었던 분야의 영화제들이다.

이러한 영화제들은 관객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기존의 영화제들에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의 새로운 영화제들에선 관객들이 좀 더 구체적인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작지만 소중한 진화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영화제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지자체나 기관의 주도를 벗어난,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형태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시작은 소규모 상영회들이 되겠지만, 어쩌면 그 안에 관객이 진정 원하는 영화제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영화제도 다품종 소량 생산 시대에 접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