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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시장∙학교가는 기차 여전히 지역주민의 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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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시장∙학교가는 기차 여전히 지역주민의 발이다

입력
2018.10.23 20:00
수정
2018.10.23 22:1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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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방문한 양원역 대합실. 양원역 대합실은 인근 마을 주민들이 직접 모은 돈으로 만들었다. 오세훈 기자
11일 방문한 양원역 대합실. 양원역 대합실은 인근 마을 주민들이 직접 모은 돈으로 만들었다. 오세훈 기자

“이제 역 앞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괜히 서글퍼. 이러다 저 역도 없어지겠지 뭐.”

12일 경북 예천군민 박광환(78) 김진남(77)씨 부부가 경북선 용궁역(경북 예천군) 앞 길을 가리켰다. 30년 전만해도 역을 중심으로 큰 장이 들어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던 곳이라고 했다. 비단 용궁역만 그럴까, 수많은 역이 무인화되거나 사라졌다.

그래도 가까스로 살아남은 벽지노선은 과거 화려한 시절을 회상하는 이들의 애환을 달래며 ‘주민의 발’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인근 읍내 5일장에 가거나 도시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기 위해 길을 나선 어르신들,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이 손님 대부분이지만.

◇병원, 시장, 학교 가는 기차

낙동강 옆 작은 마을인 경북 봉화군 원곡마을에서 한평생을 보낸 이복남(80)씨는 30㎞ 떨어진 봉화군 춘양면에서 5일장이 열릴 때마다 양원역(영동선)을 찾는다. 이씨는 “양원역이 생기기 전에는 기차를 타려면 10리(약 4㎞)를 걸어가야 했다”며 “주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 임시 승강장을 만든 게 지금의 양원역”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1988년 개통한 양원역은 도로조차 없던 오지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최초의 민자역사다. 주민들이 버스를 타려면 양원역에서 6㎞ 더 걸어가야 한다.

마을을 잇는 번듯한 도로가 있다 해도 운전이 어려운 노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영동선 승부역(경북 봉화군) 근처에 사는 배경호(91)씨는 “차도 없을뿐더러 운전 못하는 우리에겐 기차가 전부”라고 말했다. 벽지노선은 특히 도시에 있는 병원을 찾는 주민에게 절실하다. 경북선 예천역(경북 예천군)에서 만난 이홍희(84) 임숙녀(83)씨 부부는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대구로 향하는 중이었다. 14년째 정선선을 타고 정선역(강원 정선군) 근처에 있는 병원에 다닌다는 김영희(73)씨는 “시외버스가 다니지만 정류장과 병원이 멀리 떨어져있고, 기차가 훨씬 저렴하고 편하다”라고 했다.

학생과 직장인에게도 열차는 필요하다. 특히 정기승차권을 구매하면 운임요금의 최대 60%까지 할인 받을 수 있다. 영동선 묵호역(강원 동해시) 근처에 사는 대학생 한세찬(22)씨는 매일 아침 기차를 타고 강원대 도계캠퍼스로 향한다. 한씨는 “수업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고 등교하는데 정기승차권을 구매하면 비용도 훨씬 절약할 수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영동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김선영(43)씨도 “버스로도 출퇴근이 가능하지만 기차와 비교해 시간이 3배 정도 더 걸려, 매일 같은 시간에 타면 함께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12일 오전7시 코레일 직원이 무인역인 경북 상주시 함창역에서 경북선 첫차에 탑승한 승객에게 표를 발권하고 있다. 무인역에서 탑승한 승객들은 기차에 올라타 입석 표를 끊어야 한다. 정준기 기자
12일 오전7시 코레일 직원이 무인역인 경북 상주시 함창역에서 경북선 첫차에 탑승한 승객에게 표를 발권하고 있다. 무인역에서 탑승한 승객들은 기차에 올라타 입석 표를 끊어야 한다. 정준기 기자

◇무인(無人)역과 함께 늘어나는 주민들 한숨

국토교통부는 막대한 적자에도 불구하고 일부 벽지노선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공익서비스보상(PSO) 보상금을 통해 벽지노선 손실금을 보전하는 식. PSO는 철도의 공익적 기능 확보를 위해 벽지노선 운영 등 비용을 국가에서 보상하는 제도다. 하지만 한계에 도달했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2017년 벽지노선 손실보상금은 1,461억원인 반면, 벽지노선 영업손실은 2,710억원에 달했다. 운행 횟수는 줄고 무인역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유를 모를 리 없지만, 지역 주민들은 섭섭하기만 하다. 함창역(경북 상주시)에서 대구 남문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경북선에 올라탄 김성진(70)씨는 “대구에서 다시 함창으로 가는 차가 오전에 한 번 있고 그 뒤엔 전부 밤 시간대”라고 불평했다. 기차시간에 맞춰 수업 중간에 나와야 하는 학생들도 있다. 상주역 인근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금요일마다 대구의 집으로 가기 위해 경북선을 이용한다는 백승환(18)군은 “시험 기간에도 수업을 다 듣지 못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온라인 예매에 서툰 노인들은 열차시간을 물을 방법도, 표를 예매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무인역이 밉기만 하다.

오세훈 기자 cominghoon@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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