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고국으로 돌아가봐야 죽음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에도 여러 나라 국경을 뚫고 미국으로 향하는 중미 출신 불법이민자 행렬(카라반)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멕시코가 경찰 병력까지 동원했지만, 이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대응 수위를 높여 갈 태세여서 물리적 충돌마저 우려된다.
20일(현지시간) 멕시코 경찰의 검문을 피해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출신 불법 이민자 2,000여명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을 향해 계속 걸어가기로 결정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이들은 멕시코 국경도시인 시우다드 이달고의 한 광장에 모여 거수로 이 같이 결정했다.
이들의 탈출은 한 편의 서바이벌 게임을 연상케 했다. 과테말라 국경에선 수천 개 설치된 펜스를 뚫어야 했다. 이어 멕시코로 넘어가는 다리가 경찰에 의해 봉쇄되자, 무작정 뛰어들거나 뗏목을 빌려 이동했다. 아이를 업고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밧줄에 의지해 내려가는 부모들도 여럿 목격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 장관이 전날 멕시코로 달려가 “위기의 순간이 근접해오고 있다”며 멕시코 당국에 무조건 막으라고 엄포를 놨지만 결과적으로 1차 저지선이 무너지게 됐다.
물론 미국의 강경책에 ‘유턴’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원조 중단’ 압박에 놀란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정상들이 자국민의 복귀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온두라스 외교부는 이날 카라반 행렬에 동참했던 400명이 온두라스로 돌아왔다며, 이들의 구직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당근책도 내놨다. 과테말라 정부는 귀국하는 자국민을 위해 무료 버스를 운행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충동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로 국경 다리에 남아 있는 이민자들도 수백 명에 달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고온에 노출되다 보니 탈진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딸과 두 살배기 손자와 함께 온두라스를 탈출한 피델리나 바스케스씨는 “돌아가 봤자 우리는 굶어 죽거나 폭력배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미국행 의지를 드러냈다. 멕시코 당국은 여성과 노약자들을 별도의 보호시설로 옮기는 한편 일부에 한해 난민 신청도 받았다. 640명이 난민 신청한 가운데 104명이 미성년자였고, 생후 3개월 영아도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동안 잠잠하던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데는 중간선거 이슈로 적극 활용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불법 이민 문제는 범죄, 경제 불안, 테러 등과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공화당 지지층은 물론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가장 폭발력 있는 이슈”라고 전했다. 보수 성향 매체들이 수천 명의 이민자들이 몰려 있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이유 역시 사람들의 불안감과 공포심을 자극하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가 이번 중간선거의 판을 건강보험에서 불법 이민자 문제로 끌고 가려 한다”고 꼬집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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