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일갈등의 뇌관으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재상고심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오는 30일 예정된 대법원 판결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이 확정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양국 간 외교적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일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일본 기업의 패소가 확정될 경우 1965년 한일청구권ㆍ경제협력협정 위반으로 ICJ에 제소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국교정상화 당시 한국에 5억달러(무상 3억달러ㆍ유상 2억달러)의 경제협력금 제공을 통해 청구권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게 일본 측 입장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19일 “이른바 징용공 문제를 포함해 한일 간 재산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또 노무현 정부가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관련한 외교문서를 공개, 일본에 의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개인 청구권을 인정할 때 △위안부 피해자 △원폭 피해자 △사할린 잔류 한국인을 예외로 규정한 것을 강조하고 나섰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민관공동위원회를 통해 강제징용 문제는 추가 배상의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들어 일본은 한국 측이 또 다시 입장을 바꾸고 있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외무성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 경우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합의했던 양국 간 전후 처리에 대한 전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제법 상 입법ㆍ행정ㆍ사법 3권 중 어느 쪽이 협정을 위반하면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일단 일본 측은 일본 기업의 패소 시 한일청구권ㆍ경제협력협정에 정해진 분쟁 해결 절차를 바탕으로 한국 측에 양국 간 협상을 신청할 방침이다. 한국이 이에 응하지 않거나 협상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에는 제3국 위원이 포함된 중재위원회 논의를 제안하고, 그럼에도 해결이 어려우면 ICJ에 제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외무성은 중재위원회 논의 개최와 ICJ 제소를 염두에 두고 관련 문서 작성에 착수했고 담당 직원의 증원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독도 등 영유권 분쟁을 염두에 두고 ICJ에 제소될 경우 응할 의무가 생기는 강제적 관할권을 수락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일본이 제소할 경우에도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재판은 열리지 않지만, 일본은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알리는 국제 여론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울러 양국 간 정부간 협의를 중단하거나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일시 귀국시키는 등 강경 대응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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