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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가 육아 도와주는데 뭐가 힘드냐” 비난만 하는 남편

입력
2018.10.22 04:40
수정
2018.10.22 10:08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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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분담 잘 하지만 툭하면 짜증 

 노력은 안보고 상처될 말만 툭툭 

일러스트=김경진기자
일러스트=김경진기자

5세, 3세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요즘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일도 육아도 아닌 남편과의 갈등이에요. 남편은 제가 보기에 너무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고, 불만을 토로하고 짜증을 냅니다. 며칠 전 아이를 재울 때 너무 피곤했던 터라 아이들이 자기 전에 제가 먼저 잠이 들어버렸어요. 그래서 남편이 아이 둘을 재웠습니다. 다음날 남편은 제게 “밤에 컴퓨터 게임도 하고, 책도 좀 읽고 싶은데, (네가) 먼저 자니까 내가 다해야 한다”며 “힘들게 일하고 온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며 왈칵 짜증을 내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났어요. 저도 일을 하고 들어왔는데 ‘오죽 피곤하면 잠이 들었을까’하고 이해해 주길 바랐거든요. 저도 다 나름의 이유는 있어요. 피곤하기도 했지만, 평일에 항상 늦는 남편이 모처럼 일찍 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굳이 제가 끼어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남편이 못마땅해하는 건 또 있습니다. 제가 올해 복직하면서 저희 아이들은 친정 어머니가 봐주고 있습니다. 2년 전 둘째를 임신했을 때 친정 옆으로 이사 오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남편이 집에 없을 때는 오셔서 같이 아이들을 돌봐 주시고, 주말에도 종종 아이들을 봐 주십니다. 이런 도움 덕분에 상대적으로 다른 워킹맘에 비해 제 상황은 나은 편입니다.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시고, 일이 늦게 끝날 때도 아이를 돌봐 주시니까요. 하지만 남편은 이걸 공격 무기로 삼습니다. “장모가 다 도와주는데 너는 다른 엄마에 비해 하는 것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힘들어 하느냐”라고 합니다. 저도 일하고, 육아하느라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런 노력은 하나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가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가사분담이나 육아 등을 정량화해서 얘기하는 점입니다. 남편은 비교적 가사와 육아를 잘 하는 편입니다. 싸울 때면 본인이 잘한 일을 줄줄이 열거하면서 저의 부족한 면을 질책합니다. “내가 이렇게 널 배려해서 많은 걸 해주는데도 너는 왜 나를 배려하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너는 밤에 잠만 자고, 나하고 맥주 한 잔도 안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안 해준다’, ‘차도 안 타고 다닐 거면서 비싼 운전연수는 왜 받았니’ 등 저하고 살면서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모두 꺼내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이 ‘너는 무책임하다’ ‘너는 게으르다’ ‘너는 생각이 없다’고 저를 정의하는 말을 해 제게는 깊은 상처로 줍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슬프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 우울합니다.

남편의 짜증과 불만을 이해는 합니다. 그래서 “미안한데 내가 당신한테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줄 여유가 없다. 성인이니까 스스로 해결할 순 없을까. 내가 최대한 노력은 할게”라고도 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나는 너보다 더 노력하고, 배려한다”는 얘기만 반복합니다. 저는 정말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려고 일도, 육아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 남편을 주말에 실컷 자게 해주고, 평일에 늦더라도 잔소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도대체 뭘 더 어떻게 해야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안진혜(가명ㆍ32세ㆍ공무원)


진혜씨, 부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남편들이 가장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꼽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아내가 아이를 낳은 이후에 아이에게만 몰두하고 자신을 잘 안 챙겨주는 것이 가장 불만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기혼 남성들이 진혜씨 남편 같다라는 거죠. 그러면 아내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당신 애 아빠 맞아? 아직 어린 아이한테 부모가 가장 필요한데,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왜 당신은 애처럼 징징거리고 있어?”라고 답답해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애 하나를 더 키우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죠. 진혜씨나 남편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보통의 부부들이 겪는 갈등이라는 얘기예요.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우선 남편 입장부터 살펴볼게요. 진혜씨 남편의 가장 큰 불만은 뭘까요. 사랑하는 진혜씨와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는데 막상 행복하지 않고 자신은 외롭기만 합니다. 자신을 그렇게 내버려두는 아내에 대해 섭섭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고, 화가 난 겁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사소한 것들로 진혜씨에게 화를 내고 비난을 하죠. 남편은 나아가 장모가 가사와 육아를 도와주는데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진혜씨에 대한 불만만 쌓고 있어요. 장모가 그렇게 많이 도와주는데도 나를 배려할 여유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진혜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편은 남편의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진혜씨는 어떤가요. 제가 생각하기에 진혜씨가 의도를 갖고 남편을 비난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진혜씨는 남편에 비해 좀더 감정적인 사람인 듯합니다. 남편이 하는 얘기가 틀린 건 아니지만, 남편으로부터 이해와 배려를 받고 싶어 해요. 아이 둘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당연히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아이는 어른인 남편보다 우선시돼야 하는 것도 맞아요. 진혜씨의 말도 다 맞습니다. 일도, 육아도 다 열심히 하고 있는 진혜씨를 남편이 이해해주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보듬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진혜씨, 부부가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식어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그 유효기간이 끝나고 난 뒤에는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다른 사랑의 형태가 생긴다고 봐요. 예컨대 아이한테 잘하면 고맙고, 힘든 일을 하면 안쓰럽고 가여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남녀로서의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났을지언정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은 커지게 됩니다. 그건 부부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 생기는 겁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면, 공감하게 되고, 이는 배려와 협조로 이어지죠. 이 과정을 겪으면서 부부관계는 더 단단해지고 결속력이 커지게 됩니다.

진혜씨 부부는 이런 점이 부족한 것 같아요. 두 사람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 역시 부부가 공유하는 가장 큰 일 중 하나인데, 지금 진혜씨 부부는 효과적으로 육아 시간을 배분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주말에 남편이 푹 자는 동안 진혜씨가 아이를 돌보고, 진혜씨가 자면 남편이 아이를 돌보죠. 부부라기보단 업무(육아, 가사) 파트너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부부는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입니다. 아이를 돌볼 때도 되도록 함께 해야 합니다. 아주 사소하게 아이를 목욕시킬 때 한 명이 아이를 잡아주고, 다른 한 명이 아이를 씻기는 식으로 말이죠. 늘 그럴 순 없겠지만, 공유할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게 쌓인 추억과 기억이 부부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또 드리고 싶은 얘기는 두 분 모두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봐야 합니다. 나의 복잡한 생각의 과정을 내가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단점과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고, 실행과정을 평가하는 능력이 두 분 모두 부족합니다. 진혜씨와 남편이 서로에게 하는 얘기는 틀린 얘기도 아니고, 잘못된 판단도 아니에요. 서로 하는 말은 맞는데, 이 말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어요. 남편은 진혜씨에게 자신이 어떻게 대하는지, 자신의 말로 진혜씨가 얼마나 상처를 입을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아요. 이것부터 알아야 해요. 그래야 관계가 나아질 수 있어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고 묻고 싶어요. “당신이 하는 얘기는 다 옳아요. 진혜씨가 잠도 많고, 실수도 많이 하는 게 맞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당신의 말에 진혜씨가 받을 상처는 생각해 보았나요, 당신의 말이 진혜씨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라고요. 진혜씨의 남편은 계속 투덜거리기만 하지 이렇게 해보자는 얘기가 없어요. 이건 자신이 하는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얘기예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점에서 진혜씨도 비슷해요. 남편이 이해와 공감을 해주길 원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나의 행동이 어떠할지 생각해보는 노력을 하질 않았어요. 진혜씨는 남편의 비난에 자신의 정당성을 찾기 바쁘고,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하는데 급급해요. 두 사람의 대화는 그래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맴돌기만 하죠.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아주 작은 변화라도 가져올 수 있는 계획을 만들고, 실천적 노력을 할 수 있어요.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볼게요. 정말 공부를 잘하는 상위권 아이들은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지만,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기댈 곳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원을 다닙니다. 지금 두 분은 서로에게 정서적인 기대만 할 뿐 자신이 어떤 점이 부족한지 모르고 있다는 얘기예요. 남편은 ‘내가 이런 불만들 때문에 아내를 너무 비난했구나’라고 인식해야 하고, 진혜씨는 남편의 불만에 대해 ‘나의 정당성만 내세웠네’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게 관계회복을 위한 첫 단추예요. 그렇게 인지하게 되면 상대 입장을 보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 다음에는 공감을 하게 되고, 이해를 하고,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진혜씨, 두 분이 결혼을 약속할 때 서로 한 얘기들, 출산할 때의 기쁨 이런 부분을 떠올리며 부부관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여유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육아나 일에 치이게 되면 자연히 그런 여유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상대의 비난에 대응하는 데만 집중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앞으로도 두 분은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부부 사이는 따뜻한 공감의 말 한 마디로도 마음이 풀리고 다시 가까워 질 수 있거든요.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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