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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국가가 책임" 선언 1년… 도움 안 되는 센터 수두룩

입력
2018.10.29 04:40
수정
2018.10.29 07: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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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정말 국가가 책임지고 있습니까] <상> 구멍 뚫린 치매안심센터

 의료인력 부족, 지역 서비스 격차 커 취약계층 소외 

17일 경기 안산시 단원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 환자 가족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17일 경기 안산시 단원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 환자 가족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경북 상주시 은척면에서 홀로 사는 김경란(78ㆍ가명)씨는 올해 초 경증 치매(5등급) 판정을 받았다. 치매 초기여서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최근 들어 약을 먹는 것을 잊거나 냉장고에 음식이 상하는 걸 방치하는 일이 잦아졌다.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데 도움을 줄 인지재활프로그램 교육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정부가 운영한다는 치매안심센터를 물색해보고는 좌절했다. 김씨의 집에서 상주치매안심센터까지 거리는 24㎞ 가량. 버스를 타면 1시간30분 가량이 소요되는데 관절염이 심한 김씨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씨가 사는 곳까지 찾아와 줄 요양보호사도 알아봤지만, 외진 곳까지 방문해줄 사람은 없었다. 김씨와 떨어져 사는 자녀는 "마을 안에 주간보호센터가 생기거나 보건소에서 치매환자를 실어 날라주는 픽업서비스를 해주지 않는 이상 사회적 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증상이 더 빠르게 악화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치매로 인한 고통과 부담을 개인과 가족들이 모두 떠안으면서 많은 가정이 무너졌다.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해온 어르신이 건강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지난해 9월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치매국가책임제 대국민 보고대회’.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앞으로 치매는 국가가 모두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치매는 한 번 발병하면 되돌리기 어렵고, 환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의 정신적ㆍ경제적 고통이 어마어마한 만큼 국가가 책임을 지고 해결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35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치매환자 가족들은 오랜 시간 이어져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그로부터 1년여. 몇몇 변화는 있었다. 건강보험으로 치매검사를 받을 수 있게 했고 치매환자 의료비를 산정특례제도에 편입시켜 치료 비용 부담을 많이 낮췄다. 전국 곳곳에 치매 환자들을 돌봐줄 치매안심센터도 속속 들어섰다. 그런데 단 한시라도 환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가족들에게 정말 절실한 건 요양서비스의 질. 하지만 환자 가족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질의 변화는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 정부가 치매 관리의 전초기지로 구상한 ‘치매안심센터’는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전문인력도 갖추지 않은 채 문부터 열면서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지역별 서비스 격차가 더 커지고, 취약지 거주민 등 공공의료 혜택을 받아야 할 이들이 오히려 국가 치매 관리망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냉혹한 평가도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청원자는 “채매안심센터가 있어도 이용시간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직장생활을 하는 나는 지각을 하거나 조퇴를 해야 한다”며 “몇 가지 정책을 내놓고 치매국가책임제라고 할 게 아니라 인력을 보충하고 이용시간을 늘려 국가책임제라는 단어에 걸맞게 책임져 달라”고 적었다.

 ◇안심 하라더니… 절반은 ‘반쪽 센터’ 

“이응 시옷으로 된 단어요? 우산, 일산, 임신…”

지난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안산 단원 치매안심센터. 치매환자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안심센터 관계자가 ‘이응과 시옷으로 이뤄진 단어를 최대한 써보라’고 주문하자 오황태(77)씨가 차근차근 종이에 글자를 적어내려 갔다. 오씨는 2년 전 경증 치매(장기요양 4등급) 판정을 받은 남편을 홀로 돌보다가 지난 6월부터 매주 한번씩 센터의 치매환자 가족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남편 돌보랴, 집안일 하랴 2년 간 병원과 자택만 오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사회와 벽을 쌓고 우울감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에 이곳을 찾게 됐다고 한다. 이날은 치매환자를 돕느라 자신의 인지기능 저하 증세를 놓칠 수 있는 환자 가족들을 위한 예방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오씨가 다른 치매환자가족 4명과 교육을 받는 동안, 남편도 센터 한 켠에서 치매환자를 위한 인지재활프로그램을 수강했다.

정부는 이처럼 치매 검진과 조기 발견, 의료·복지·돌봄·요양서비스를 제공하고 연계해주는 치매안심센터를 확대 설치하는 것을 치매국가책임제의 첫 과제로 삼았다.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치매로 판별되면 장기요양 등급 판정 절차도 안내해주고, 치매안심병원 등과 연계해줘 치매환자 가족들이 느끼는 의료와 돌봄 사이의 공백을 없애겠다는 계획이었다.

정부가 목표한 건 지난해 말까지 전국 256개 시군구에 1개씩 설치ㆍ운영하는 것. 하지만 시작 1년이 지나도록 아직 정식 개소조차 못한 곳이 상당수다.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ㆍ시설 인력 요건 등을 대체로 갖춰 정식 개소한 센터는 65개소뿐. 이전부터 설치돼 안심센터와 유사한 기능을 해 왔던 47개소를 제외한 나머지 144개소는 필수 인력 7명만 채용한 후 ‘부분 개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인력 부족이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까지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 6,000명 정도의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6월 말 기준 실제 채용 인원은 2,517명으로 센터 1곳 당 10명 안팎 수준이다. 간호사ㆍ사회복지사ㆍ임상심리사ㆍ작업치료사가 모두 1명 이상씩 근무중인 곳은 37개소(14.5%)에 불과하과, 아직까지 협력의사(신경과 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한 곳도 44곳(17.2%)이나 된다. 문을 열기는 했지만 치매환자들에게 별반 도움을 주기 어려운 센터가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투입된 인력들의 고충도 클 수밖에 없다. 전북 전주시의 경우 센터 직원 15명이 담당해야 할 환자가 7,910명. 직원 1인당 527.3명을 돌봐야 할 정도다. 지역의 치매안심센터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현장에 급하게 투입돼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인력들이 많다”며 “업무량도 많고, 실적 압박도 크다”고 토로했다. 안산 단원센터처럼 인프라를 갖춰 치매예방과 관리를 잘 해 나가는 곳은 극히 소수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취약계층 찾기보다 실적 쌓기 급급 

우여곡절 끝에 안심센터가 문을 열어도 현장에서는 경북 상주 김경란씨처럼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일수록 이용 혜택에서 소외되는 현상도 빚어진다. 현재 치매안심센터는 각 지역 보건소를 중심으로 설치됐는데 지리적으로 센터 가까이 거주하거나 보호자가 있어 센터로 내원하기 용이한 이들, 거동이 자유로워 센터의 출장 선별검사 등의 서비스를 접할 수 있는 이들이 주로 정부의 관리망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 은평구 치매안심센터장인 송은향 서북병원 신경과 과장은 “독거노인이면서 자녀가 없거나 혹은 자녀가 있대도 부양이 되지 않는 노인들이 사실상 돌봄이 필요한 가장 주요한 대상”이라며 “지금처럼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 인구를 대상으로 삼다 보면 오히려 공공의료가 절실한 노인들이 되레 배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각 센터들이 취약 계층을 찾아내는 것보다 조기검진 실적을 올리기 위한 무리한 검사를 진행한다는 증언도 나온다. 제주 지역 안심센터 협력의사인 박환석 서귀포의료원 신경과 과장은 “안심센터 직원들이 목표로 하는 실적을 채우기 위해 지역에서 열리는 노인 행사마다 출장을 다니며 검사를 하는 방식으로 수검률을 높인다”며 “운동장과 같은 개방된 곳에서 5분 만에 급하게 한 검사는 정확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안심센터 프로그램ㆍ사례관리 부실 

안심센터가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양이나 질도 환자나 가족들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복지부의 센터 운영 지침에 따르면, 치매환자나 환자가족은 센터 내에서 기본 3개월, 연장하면 최대 6개월까지만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다. 다양한 환자와 가족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에 기한을 정해둔 것이지만 짧아도 너무 짧다. 더구나 지방의 경우 센터 이용 뒤에 갈만한 곳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안산 단원 센터에서 가족 모임에 참석하는 김형섭(74)씨는 “5년 전 부인이 치매 5급 진단을 받은 후 거의 바깥 활동을 못하다가 센터를 통해 바깥으로 나왔지만 활동 기간이 길어야 6개월이리 교육 효과를 보기엔 기간이 너무 짧다”며 “이 정도로 국가가 책임진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아쉬워했다.

프로그램 내용의 다양성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중증 치매환자를 수년째 돌보고 있는 이경옥(59ㆍ가명)씨는 “치매안심센터에서 가족 치유모임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와서 가보니 초기 치매환자 가족들이 들어야 할 예방법만 설명해줘서 이미 그 과정을 겪은 중증환자 가족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치매안심센터가 애초 주요 기능으로 내세운 ‘1대1 사례관리’를 통한 장기요양시설로의 연계 기능도 여전히 취약하다. 이지영 신경과 전문의는 “센터에서 진단을 받거나 프로그램을 수강한 환자들의 치료 지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상당수가 장기요양시설 이용 연계로 이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연계 가능한 민간 시설을 파악하고 민관이 협력하는 부분이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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