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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장애 가진 딸을 키웁니다” 무책임한 부모 꾸짖은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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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장애 가진 딸을 키웁니다” 무책임한 부모 꾸짖은 경찰관

입력
2018.10.21 11:00
수정
2018.10.2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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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만 입고 있는 여자가 빗속에 서 있어요.” 지난 5월 16일 서울 강남경찰서 논현1파출소로 신고가 들어왔다. 주초에는 30도 가까이 오르던 낮 기온이 비 때문에 한풀 꺾인 봄날이었다. 3팀 장경우 경사가 현장으로 갔더니 20대 여성이 상의를 벗은 채 비를 맞고 골목길에 서 있었다. 장 경사가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여성은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지적 장애 여성이었다. 장 경사는 여성이 옷을 입도록 돕고 파출소로 데려와 여성의 신원을 확인하고 부모에게 연락했다.

장 경사가 상의를 탈의한 채 길가에서 옷을 벗고 있던 장애 여성을 파출소로 데려가고 있다.
장 경사가 상의를 탈의한 채 길가에서 옷을 벗고 있던 장애 여성을 파출소로 데려가고 있다.

장 경사의 연락을 받은 부모는 한숨을 쉬더니 ‘또 그랬냐’는 식으로 답했다. 자녀를 집에 데리고 가시라는 말에 어머니는 “내가 지금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곤란하다”고 답했고 아버지는 “일터에 있어서 안 된다”고 말했다. 장 경사는 “저도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고 있는데 부모가 그러시면 안 되죠”라고 부모에게 말하고 이들의 행동이 유기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행동이라는 점을 알렸다. 그 말을 듣고서 두 시간 뒤 나타난 부모는 어떤 인사도 없이 비에 젖은 자식을 데려갔다.

◇“그 부모가 완전히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장애 아동을 키우는 처지에서 그 부모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에요.” 장 경사가 말했다. 그도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올해 다섯살인 둘째 딸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첫째 아들이 걸음마를 뗀 시기인 생후 10개월, 둘째는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심하게 경기를 일으켰다. 급한 마음에 병원에 데려갔지만, 원인을 모르는 건 의사도 마찬가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이의 정신과 신체 발달이 장애가 없는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늦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순찰중인 장경우 경사. 홍인택 기자
순찰중인 장경우 경사. 홍인택 기자

이후 장 경사 부부는 아이의 발달을 돕는 일에 삶의 초점을 다시 맞췄다. 아이가 병원 진료와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으려면 평일에 시간을 내야 했고, 주간과 야간을 번갈아 일하는 파출소 근무를 자진했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해 사건 사고가 잦은 논현1파출소를 근무지로 희망한 것도 삼성병원과 아산병원에 가까운 입지 때문이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재활치료 하나를 받기 위해 2~3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찾기 어려웠지만,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아이 재활을 위해 노력했고, 딸은 36개월부터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됐다.

-딸이 아프다는 걸 알고서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그나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시기가 7살까지라고 한다. 그때까지 아이가 최대한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상태를 호전시켜야 한다. 아이의 치료를 최우선에 두는 건 장애를 가진 자식이 있는 부모 모두가 똑같을 거다. 또 비장애인인 첫째가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간다. 부모의 신경이 온통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쏠리면 다른 아이도 우울증을 겪게 된다고 한다. 첫째가 서운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한다.“

-주간과 야간을 번갈아일하는 근무 특성상 아이들을 돌보기 어렵지 않나.

“본서에서는 주ㆍ야간 및 당직 근무를 들어가는 부서를 제외하곤 낮에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데 그렇게 되면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게 쉽지 않다. 야간 근무가 끝나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고, 또 근무지와 병원이 상대적으로 가까워 둘째가 아픈 걸 알고서는 파출소나 지구대 근무를 희망해왔다.”

-아이 치료를 위해서 어떤 것들을 하고 있나?

“병원과 장애인복지관에 다니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 다니는 장애인복지관에는 들어가기까지 2년이 걸렸다. 일반 재활센터에서 40분짜리 재활치료를 받으려면 1회에 6,7만원씩 든다. 지금 다니는 장애인복지관은 집에서 가깝고 가격도 5분의 1 수준이다. 2년의 대기 기간에는 이 병원, 저 시설을 찾아다녔다. 다른 부모들도 비슷할 것이다.”

아이가 가진 장애를 완전히 극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는 삶. 장 경사는 본인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것이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삶’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아이의 운명에 대한 체념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굳건한 사랑에서 나온 표현처럼 들렸다.

자식에 대한 사랑도 삶 속에서 부딪히는 갖은 장애물 앞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장 경사가 자식 데려가기를 꺼린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 있다. 그렇기에 그런 어려움을 포용하는 부모의 사랑은 더욱 존경스럽다. 장 경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말해달라’ 묻자 올해 있었던 ‘존속 상해’ 사건을 꼽았다.장 경사가 현장에 갔을 때 피해자인 아버지는 “아들은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몸에 남은 ‘방어흔’과 바닥의 핏자국이 선명한데도 흉기를 숨기고 아들을 보호하려는 아버지. 존속상해 사건 속 역설적인 부성애는 아직 장 경사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장경우 경사의 가족사진. 아버지와 여동생, 매부 모두 경찰이다.
장경우 경사의 가족사진. 아버지와 여동생, 매부 모두 경찰이다.

◇차적조회 한 달 2만 건...'기본은 하는 사람이 되자!'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엔 가족사진이 있고 그 아래엔 ‘기본은 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상태메시지가 적혀있다. 배경엔 정복을 입은 경찰 4명이 꽃다발을 안고 앉아 있다. 경찰 가족인 장 경사 집안 사진이다. 아버지와 여동생, 여동생의 남편 모두 경찰로 장 경사는 “제가 제일 계급이 낮습니다”라며 웃었다. ‘두 아이를 돌보는 아버지’와 ‘제복을 입은 경찰’. ‘기본은 하는 사람이 되자!’는 상태메시지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충실히 해내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장 경사는 경찰의 책임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장 경사가 지난해부터 잡은 범인은 764명. 올해에만 450건을 해결했다. 절도 피의자 37명, 성폭력 피의자 40명에 보이스피싱 피의자, 마약 사범까지 다양한 범인들을 하루 2명 이상 검거한 셈이다.

-상태메시지는 무슨 뜻인가?

“‘농땡이를 부리지 말자. 내가 근무하는 시간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자.’ 그런 의미에요. 제 경찰 신조에요. 또 다른 신조는 ‘1일 3단속’, 말 그대로 하루 세 건 이상은 꼭 ‘나쁜 사람’을 잡겠다는 뜻이에요. 초임 순경부터 파출소 경찰로 근무하면서 매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찰관의 기본은 무엇인가?

“경찰이 하는 역할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다른 하나는 범죄자를 잡는 것. 저는 두 번째 역할을 제대로 하면 결과적으로 시민들이 더 살기 편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왜 잘못된 생각인가?

“지금 시대가 경찰관에게 요구하는 것은 첫번째 역할이라고 봐요. 시민들이 요구하는 봉사, 선행, 서비스요. 제가 두 번째 역할을 먼저라고 생각하는 데는 아버지 영향이 있는 거 같아요. 저희 아버지가 38년간 경찰로 일하면서 30년을 형사로 일하셨어요. ‘나쁜 사람’들을 많이 잡았죠. 어릴 때 본 아버지의 모습이 제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거 같아요. 어릴 때는 집으로 걸려오는 협박 전화도 많았고 찾아와 ‘죽여버리겠다’며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하는 일이 멋있게 보였어요.”

-기본을 다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저는 순찰을 할 때 쉴 새 없이 단말기(PDA)로 차적 조회를 해요.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차량번호를 조회해 수배차량인지 아닌지 확인해요. 경험상 밤에 전조등을 끄고 운행하는 차량 중에 음주 차량 비율이 높더군요. 또 거칠게 운행하는 차량은 더 주의 깊게 봅니다. “

야간 근무 기준 하루 13시간을 일하면서 쉬지 않고 단말기를 두드려 많을 때는 한 달에 2만건가량 차적 조회를 한 적도 있다.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강남경찰서에서 실시한 ‘PDA조회 개인 실적 평가’에서 장경사는 3개월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한달에 2만건을 했다는 게 잘 상상이 안 된다.

“처음에는 본서에서도 잘 믿지 못하는 눈치였어요. (웃음) 112 신고 출동과 파출소에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 근무를 제외하고 대부분 시간을 차적 조회를 해요. 야간 근무 때 2시간 주어지는 대기 시간도 저는 보통 순찰차에 있는 편이에요.”

-그런 ‘기본’은 누구에게 배웠나?

“경찰 시험에 합격하고 처음 순경으로 파출소에 배치받았을 때사수에게 배웠어요. 계속 차량 조회하고 수배자를 찾고, 그때 몸에 들였던 습관이 아직 남아있는 거죠.”

여성이 흰색 아우디 차량에 탑승하려다 순찰차를 보고 다시 돌아가자 장 경사는 '콜뛰기' 차량으로 의심하고 정차 명령을 했다. 골목길에서 추격전을 거쳐 차량을 멈춰세우니 운전자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여성이 흰색 아우디 차량에 탑승하려다 순찰차를 보고 다시 돌아가자 장 경사는 '콜뛰기' 차량으로 의심하고 정차 명령을 했다. 골목길에서 추격전을 거쳐 차량을 멈춰세우니 운전자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나태해지지 않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기본. 기본을 다하는 경찰 앞에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초조해하고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장 경사가 지난달 28일 무면허운전 혐의로 체포한 이모(33)씨도 그런 경우다. 장 경사가 이씨가 몰던 흰색 아우디 차량을 순찰 중 처음 발견했을 때는 ‘콜뛰기’를 의심했다. ‘콜뛰기’란 일종의 불법 택시 영업으로 자가용 차량으로 승객을 운송하는 범죄. 주로 고객은 유흥업소 여성들이 이용한다는 게 장 경사의 설명이다.

이날도 한 여성이 미용실에서 나와 아우디 차량에 탔다가 순찰차를 확인하고는 다시 문을 열고 나와 미용실로 들어갔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장 경사가 정차명령을 했고, 아우디 차량이 도망가면서 추격전이 펼쳐졌다. 좁은 논현동 골목길을 요리조리 달리며 순찰차를 피하던 아우디 차량은 10분도 못 가 골목길에 진입하던 다른 시민들의 차량에 가로막혔다. 사면초가에 빠지자 운전자는“면허가 없는 상태로 운전을 해 도망쳤다”고 실토했다. 이씨의 신원을 확인해보니 지난해 11월 12일에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해 면허가 취소된 상태로 지난 5월에는 같은 혐의로 지명수배까지 됐었다.

여성이 흰색 아우디 차량에 탑승하려다 순찰차를 보고 다시 돌아가자 장 경사는 '콜뛰기' 차량으로 의심하고 정차 명령을 했다. 골목길에서 추격전을 거쳐 차량을 멈춰세우니 운전자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여성이 흰색 아우디 차량에 탑승하려다 순찰차를 보고 다시 돌아가자 장 경사는 '콜뛰기' 차량으로 의심하고 정차 명령을 했다. 골목길에서 추격전을 거쳐 차량을 멈춰세우니 운전자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그렇게 배우고 갈고 닦은 기본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장 경사의 역할이다. 장 경사의 파트너는 주로 신임 순경들이다. 지금 장 경사의 파트너도 6월 30일 논현1파출소로 배치된 박현진 순경. 장 경사의 ‘기본’ 교육에 대해 “단말기 조회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습니다”며 뼈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착실하게 비법을 전수받는 중이다. 장 경사는 “차적 조회하고 수배자를 검거하는 기본적인 일들에서 후배들이 ‘내가 경찰이구나’하는 보람을 느낄 것”이라 말했다.

◇“하루만 지나도 말려준 걸 감사하게 생각할 것”

장 경사를 만난 15일 새벽. 월요일 새벽이지만 장 경사가 오른쪽 어깨에 달고 있는 무전기로 쉴 새 없이 신고 내용이 전해졌다. 논현1파출소 관할 구역에는 클럽과 유흥가가 많기에 음주로 인한 범죄에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 직후 논현동 모 술집 앞에서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싸우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월요일 새벽이었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로 인한 출동은 끊이지 않았다. 홍인택 기자
월요일 새벽이었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로 인한 출동은 끊이지 않았다. 홍인택 기자

현장에 도착하니 범인은 역시나 술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취한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몸을 흐느적거리는 외국인 일행이 경찰을 사이에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재킷을 입은 한국인 남성은 경찰에 “술을 마시고 집에 가려는데 저 외국인이 내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말했다. 장 경사는 후배들을 시켜 서로에게 달려들려는 양측을 말리고 옆에 있던 폐쇄회로(CC)TV에 어떤 내용이 찍혔는지를 관제센터에 확인했다. “청재킷 입은 남성이 먼저 외국인들에게 달려들었고 발길질을 했다. 이후 서로 밀치고 주고받았다.” 시비를 먼저 건 것은 한국인이었고, 쌍방폭행으로 번진 상황이었다. 장 경사는 양측의 신원을 확인하고 “서로 화해하고 가시면 경찰서까지 갈 일 없다”며 양쪽을 설득했다.

“내가 고소하면 외국인들 쫓겨나는 거 아니냐”며 흥분하는 남성에 장 경사는“먼저 시비를 거시지 않았냐, 그리고 저들은 합법적으로 입국한 사람들이다”라고 재차 말했다. 이윽고 남성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돌려 골목 너머로 사라졌지만, 장 경사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어, 다시 달려오고 있는데요?” 박순경이 말이 끝나기 무서운 기세로 뛰어가는 젊은 남성의 모습이 보인다. 다시 차에서 내린 경찰관들이 가로막자 남성은 “한국인이 외국인한테 맞으면 편 좀 들어달라”고 따진다. 이윽고 그는 외국인 무리를 향해서 가운뎃손가락을 들더니 욕설을 뱉었다. 그래도 판단력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는지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서울 강남경찰서 논현1파출소 장경우 경사. 홍인택 기자
서울 강남경찰서 논현1파출소 장경우 경사. 홍인택 기자

“하루만 지나도 오늘 경찰들이 말린 걸 고맙게 생각할 거예요.” 외국인들이 택시를 타고 현장을 떠난 걸 확인한 장 경사가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음주 의심 차량을 확인해보라”는 음성이 무전기에서 나왔다.

이렇게 전쟁 같은 야간 근무가 끝나면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삶. 장 경사는 “아이들의 곁에 있어줄 수 있고, 또 자랑스러운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뿌듯하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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