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나선 ‘한국판 프로불편러’]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의 창업자 중에도 프로불편러들이 존재한다. 우버(Uber)를 창업한 트레비스 칼라닉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적인 사례다. 칼라닉은 2008년 프랑스 파리 정보기술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30분 이상 택시를 기다리다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에어비앤비도 공동 창업자들이 미 샌프란시스코 시내 호텔을 예약하려다 실패한 경험을 토대로 탄생했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해외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국내에도 일상 속 불편함이 창업으로 이어진 경우가 즐비하다.
누구나 해외여행을 떠나 현지 문자를 읽지 못하거나 처음 보는 전자제품에 당황해 기기를 작동하지 못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김화경(38) 로켓뷰 대표는 이 같은 불편을 겪은 후에 라이콘(LiCONㆍLightly Control)을 개발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특정 기기를 찍으면 컨트롤러, 사용 매뉴얼, 제품 정보 보기 기능 등이 화면에 나타나 처음 보는 제품이라도 손쉽게 작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다.
김 대표는 “말레이시아에 출장을 갔는데 호텔에 있던 기기를 작동시키지 못해서 직원을 불렀던 경험이 있다”며 “문자를 읽기 어려운 나라의 제품, 또는 처음 접하는 제품을 수월하게 작동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창업의 단초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라이콘은 아직 사물인식 기술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아 정식 시판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편함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김 대표의 습관은 또 다른 사업 아이템 개발로 이어졌다. 로켓뷰는 최근 모바일 앱 ‘찍검’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 진열된 상품명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인식시키면 같은 제품의 최저가 정보, 제품 상세정보 등을 보여줘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앱이다. “20대 여성들은 화장품을 살 때 꼼꼼히 따져보는 습관이 있는데, 휴대폰 단말기의 작은 키보드를 일일이 누르는 게 번거롭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타이핑하는 불편을 줄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업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죠.”
오아름(29) 보그앤보야지 대표도 오랜 출장 경험 속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아이디어로 발전시켜 2016년 7월 기업을 세웠다. 기존 직장에서 해외 영업을 담당했던 오 대표는 세계 곳곳으로 출장 다니며 상황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가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실제로 출장이 잦은 직장인들은 한국을 떠날 때보다 귀국 짐이 늘어 현지에서 가방을 사야 하는 경우를 왕왕 맞닥뜨린다. 그는 이 지점을 공략해 3단으로 사이즈 변형이 가능한 여행가방을 개발했다.
“수백 번 짐을 쌌다 풀었다 하면서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가방사이즈를 고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예 사이즈 변형이 가능한 여행 가방을 만들면 이런 불편함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오 대표의 사업 철학은 거창하지 않다. 그는 “’불편해도 괜찮아’가 아니라 ‘불편함을 넘기지 말자’는 정신을 가지면 일상에서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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