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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미션 임파서블 ‘카슈끄지’

입력
2018.10.1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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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 들어간 뒤 실종된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그가 사우디 요원들에 의해 암살됐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 들어간 뒤 실종된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그가 사우디 요원들에 의해 암살됐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당신의 요원이 붙잡히거나 살해되면, 우리 정부는 이 작전에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할 것입니다.”

주인공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하달한 테이프는 이러한 메시지를 보낸 뒤, 5초 후 ‘치익’ 소리와 하얀 연기를 내며 타 들어간다. 미국에서 TV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긴, 첩보원들의 세계는 당연히 저래야지 하면서.

그런데 실제로 눈앞에서 이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사우디아라비아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는 지난 2일 터키 내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건 당일 사우디 요원 15명이 터키에 입국했고, 이들 중엔 사우디 실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경호원, 왕실 근위대, 최고위층과 연결된 부검 전문의 등도 포함돼 있었다. 카슈끄지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오디오 파일을 들었다는 터키 정부 관리는 “그는 손가락 절단 고문을 당한 뒤 참수됐고, 시신은 분해 처리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사우디 왕실이 카슈끄지 살해의 배후임을 보여주는 정황들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사우디 정부가 내놓은 공식 입장은 “그는 안전하게 영사관에서 나갔다”와 “우리는 그의 행방을 모른다”, 이렇게 딱 두 가지다. ‘미션 임파서블’ 속 미국 정부의 태도와 정확히 똑같다.

하지만 현실의 무게란 가상 세계와는 다른 법.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처럼 사우디의 모르쇠를 ‘그냥 그러려니’ 정도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국제사회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사우디를 압박하는 건 당연한 흐름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이 사건의 실체는 과연 낱낱이 드러날 수 있을까. ‘꼬리 자르기’ 식의 보고서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진 사우디 정부에 큰 기대를 걸 만큼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몫이다. 사우디와 공동수사를 진행하는 터키, ‘세계의 경찰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 등은 정말로 투명한 조사 및 책임자 처벌을 바라고, 이를 수행할 강력한 의지도 갖고 있을까.

우선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사건 발생 1주일 만인 지난 9일 “사우디 왕실 책임이 아니다”라고 미리 선을 그었다. 반면 터키 언론들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 사우디 왕실의 연루 흔적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터키는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180개국 중 157위인 대표적인 언론통제 국가다. 터키 언론 보도에는 정부의 ‘의도’가 담겼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얘기다. 터키에 있어 이 사건은 사우디와의 아랍지역 패권 경쟁에 활용되는 수단에 불과해 보인다. 터키 정부가 입수한 증거들을 직접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해 뉴욕타임스는 “국제적인 음모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했다.

다음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빈 살만 왕세자 구하기’ 노력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보기 민망할 정도다. 특히 압권은 대사우디 제재 요구에 대해 “사우디와 맺은 1,100억달러 규모 무기 판매 계약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12일 CBS 인터뷰)고 한 발언이다. 미국의 외교정책 우선 순위는 인권과 정의 따위가 아니라 결국 ‘돈’임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 왕실의 개입 사실이 밝혀지길 결코 원치 않는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카슈끄지 사건은 아마도 국제사회의 ‘추악한 뒷거래’를 명징하게 드러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은 얼마나 다른가. 예컨대 양승태 대법원이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 소멸 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단축시킨 건 인권 보호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그보다 돈을 우위에 놓은 대표적 판결이었다.(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이를 위헌 판단했다) 각종 부패 사건을 다루며 가장 많은 ‘꼬리 자르기’를 접했을 사법부가 이제는 재판 뒷거래, 곧 사법농단의 꼬리를 자르려 애쓰고 있다. 적폐청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정우 국제부 차장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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