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 논란이 커지면서 누리과정 지원금을 유치원ㆍ어린이집이 아닌 학부모에게 직접 지원하라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 돈이 사립유치원으로 들어가는 게 문제다. 학부모에게 직접 지원하라’는 등의 청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립유치원 단체 역시 “회계 비리 오명에서 자유롭고 싶다”며 학부모 직접 지급안에 힘을 싣고 있는 상황. 하지만 전문가들은 학부모에게 누리과정비가 직접 지원되면 보육비의 흐름을 추적하기 어려워져 감시 구멍만 더 커질 것이라며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18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누리과정비 예산은 유치원에 1조8,341억원, 어린이집에 2조586억원 투입된다. 만 3~5세 아동의 학부모가 정부에 지원금 신청을 하고 정부 인증 은행에서 발급하는 ‘아이행복카드(바우처)’를 받으면, 이 카드를 갖고 유치원ㆍ어린이집에서 직접 결제하는 식으로 사용된다. 이 같은 바우처 방식은 2013년 누리과정 도입 당시 학부모 선택권과 무상보육 체감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결정됐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해당 지원금이 자신의 통장을 거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지급되는 게 아니라, 결제 정보를 바탕으로 정부가 유치원 등에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흐른다는 점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학부모 손을 거치지 않으니 불투명하게 사용될 여지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누리과정비가 학부모에 직접 지원되면 되레 관리ㆍ감독 공백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현재는 누리과정비가 유치원 등에 지원돼 그나마 사용처 등을 일부 확인할 수 있는 구조”라며 “학부모들에게 직접 지원되면 해당 돈이 정부로부터 시작된 돈인지 여부조차 확인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대법원은 형식 상 누리과정비가 바우처 형식으로 학부모를 통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지급되기 때문에 이 돈이 사용처가 정해져 있는 ‘보조금’이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이행복카드로 결제된 지원금을 운전기사로 허위 등록한 남편의 월급 등에 써 횡령 혐의로 기소된 어린이집 원장이 무죄(본보 10월17일자 11면)라고 판단되기도 했다. 만약 누리과정비가 학부모 손에 직접 쥐어져 ‘비(非) 보조금’ 성격이 짙어진다면, 유치원ㆍ어린이집 원장이 부정사용해도 위법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더욱 적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사립유치원 원장이 모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수년 전부터 ‘누리과정비 29만원을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하라’고 주장해 온 것에도 이 같은 속내가 담겼다.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하면 사립유치원이 회계비리를 저질렀다는 오명을 씻을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유치원 입장에선 같은 돈을 받는데도 사용처가 더욱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권지영 교육부 유아정책과장은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되면 생활비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될 여지가 있고, 원으로 모두 지불된다 해도 흐름 파악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에 현재로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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