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북한이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갈 수 있다”고 북한의 방북 제안을 사실상 수락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남북ㆍ북미 간 합의에도 구속력이 더해졌다. 평화의 상징인 교황이 사상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공증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교황 방북으로 북한은 국제사회에 공언한 비핵화 의지의 신뢰를 제고하고,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 담판에 보다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할 것이란 전망이다.
교황의 방북은 올 초부터 정상국가로의 변모를 지향해 온 북한이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 진입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비핵화 의지의 신뢰도를 끌어 올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북한이 교황 방북이 주민들에게 미칠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모험을 시도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 제68조에서 ‘신앙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지만, 김씨 일가의 독재 체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종교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에 시사하는 바도 작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지지가 확산된다면 미국으로서도 반드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 내지는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적당한 수준에서 북한과 타협하거나, 국내의 비판적 여론을 이유로 지지부진한 협상을 이어갈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교황 방북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대북 영향력을 보다 확대할 수 있고, 남북관계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방북 시기는 내년 초가 거론된다. 앞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제가 들은 바로는 교황이 내년 봄에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 하신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만약 교황이 방북한다면 내년 일본 방문 때에 맞춰 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북 성사 조건으로 ‘초청장 발송’을 언급한 만큼, 대내외적인 상황을 보며 북한이 방북 시기를 조정할 수도 있다.
북한이 교황 방문을 추진한 건 처음이 아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와 과거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북한은 김일성 주석 시기인 1991년 외교적 고립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황 평양 초청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해 교황 방북을 추진했으나, 가톨릭 열풍이 불 것을 우려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어 200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제안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당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를 공식 초청했으나, 내부 사정으로 더 진행되지 않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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