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한동안 우리 연예계에서 ‘멀티 엔터테이너’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의 대상이었다.
연기자가 노래를 하거나 가수가 연기를 할 때면 ‘외도’ 혹은 ‘부업’이란 표현으로 다소 낮춰 보곤 했다. 결과에 들이대는 잣대도 유독 엄격해, ‘한 우물만 파라’는 식의 훈계를 곁들여가며 본업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비교적 강했다.
▶ 그래서였을까, 일례로 희극인 고(故) 구봉서는 4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명배우이기도 했지만 한국 영화사의 주요 인물로 평가받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70~80년대 ‘오빠부대’를 이끌었던 가수 남진과 전영록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남진은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등재된 출연작 편수만 무려 72편이다. 그러나 배우로서의 그에 대한 영화계의 공식적인 평가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전영록 역시 가수로 맹활약하면서도 청춘영화의 아이콘에서 액션 프랜차이즈물 ‘돌아이’ 시리즈 의 주인공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등 다방면에서 아주 진귀한 족적을 남겼으나, ‘인기를 등에 업고 연기를 잠시 겸업했던 가수’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다.
▶ 이제 100일도 안 남은 올 한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깊게 연기한 여성 연기자를 꼽으라면 단연 ‘나의 아저씨’의 이지은이다.
깜찍한 자태로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좋은 날’의 한 대목)을 외치던 아이유가 아닌, 거칠고 냉소적인 성격의 고단한 청춘을 완벽하게 소화한 이지은이 최근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 스타어워즈’ 시상식에서 연기만 하는 전업 배우들을 물리치고 여자 중편드라마 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전위적인 패션과 무대 퍼포먼스로 익숙한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도 이지은의 수상 소식을 접할 때와 비슷하다.
민낯에 가까운 일상 생활의 얼굴을 처음 공개한 영화 ‘스타 이즈 본’으로 내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반열에 벌써 올랐다는데, 상을 받더라도 무엇 하나 이상한 게 없을 만큼 열연했고 호연했다.
▶ 물론 눈길 끌기식 마케팅 혹은 단발성 이벤트 차원의 ‘영역 넘나들기’는 별로 반갑지 않다. 이를테면 기본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소속사의 일방적인 주도로 이뤄지는 일부 아이돌 가수들의 연기 겸업이 대표적이다.
재능과 열정 그리고 진심이 뒷받침되고 느껴진다면 멀티 엔터테이너들의 ‘영역 넘나들기’는 신선한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더불어 이들의 팔방미인 재능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자주 이뤄졌으면 한다. 더 많은 멀티 엔터테이너들이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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