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성향 후보의 낙승일까, 좌파 적통을 잇는 후보의 대역전일까. 28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를 앞둔 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의 정국 상황이다. 결선 투표는 지난 7일 진행된 1차 투표에서 46.03%를 득표한 극우 대중주의 성향의 사회자유당(PSL) 자이르 보우소나루(63) 후보와 29.28%를 득표한 노동자당(PT) 페르난두 아다지(55) 후보의 대결로 치러진다. 결선 투표까지 1주일 가량 남은 현재 1차 투표에서 과반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보인 보우소나루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아다지 후보는 오랜 좌파집권에 실망한 표심을 감안해 중도적 이미지를 강조하며 막판 추격에 나섰다.
예상보다 강력했던 보우소나루 돌풍… 원동력은
브라질의 실질적인 대선 레이스는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노동자당이 아다지로 대선 후보를 교체한 9월 이후 진행됐다. 이 기간 보우소나루 후보는 20~30% 지지율로 여타 후보들을 따돌리면서 안정적인 선두를 유지했다. 1차 투표에서 선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나왔지만 46% 득표율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브라질 26개주 중 동북부 일부를 제외한 17개주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전국에서 고르게 득표했다. 각국 언론은 ‘보우소나루가 대중들의 분노의 물결을 탔다’, ‘자유주의 질서의 붕괴와 대중주의 발흥의 또 다른 장(章)을 열었다’며 그의 등장을 대서특필했다.
군사정권시기(1964~1984년)에 대해 공공연한 찬사를 보내고, 성소수자ㆍ여성ㆍ원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면서 ‘열대의 트럼프(Tropical Trump)’라고까지 불리는 보우소나루 돌풍의 근인은 무엇일까. 세계 언론과 전문가들은 만연한 정치부패에 대한 불만, 불안해진 치안, 노동자당의 장기 집권(2003~2016년)에 따른 변화 욕구 등을 꼽는다.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부패척결이었다. 세차작전(Laba Jato)으로 잘 알려진 반부패수사로 3명의 전ㆍ현직 대통령이 구속되거나 탄핵, 기소될 위기에 처하는 등 브라질 정치계에 만연한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아웃사이더 보우소나루 후보의 약진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상파울루의 주부 마리아 아페레시다 드 올리비에라(63)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똑같은 정치인들에 질렸기 때문에 보우소나루를 찍었다”며 “그가 좀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변화를 가져올 인물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부패에 대한 염증 때문인지 대선 1차 투표와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도 상원(81석)의 85%, 하원(513석) 중 53%가 정치 신인으로 채워지는 등 물갈이 바람이 거셌다.
심각한 치안불안도 ‘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총기규제 완화를 주장한 보우소나루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브라질 공공치안포럼에 따르면 2016년 브라질의 살인사건 사망자는 6만2,517명으로 유럽의 30배에 달했다. 룰라 대통령 집권기 보우사파밀리아(소득이전프로그램) 시행으로 범죄율이 잠시 주춤했지만, 그 이후 빠르게 증가하며 리우 올림픽 기간에는 군대가 치안을 유지해야 할 정도였다. 여기에 인접국 베네수엘라의 경제난 악화로 난민이 북서부 국경지대인 호라이마주로 유입되면서 치안 불안이 고조됐다. 브라질 동남부 산타마르타의 관광객 호세 카를로스 페레이라 두아르테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브라질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 하거나 국민들을 보호해 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다”며 “변화를 위해 도박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불황도 브라질 국민들의 마음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연 4%라는 비교적 낮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경제는 환율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일자리 창출도 여의치 않다. 경기 호황기에 집권했던 노동자당 정부의 과감한 복지 프로그램으로 인한 재정적자 해소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보우소나루 후보는 경제고문으로 미국 시카고대 출신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파울루 구에데스를 영입해 친기업ㆍ친시장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과 투자자들에게도 어필했다는 분석이다. 조희문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브라질 변호사)는 “좌파 집권이 10년 이상 계속되면서 우파로 흐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부패가 이슈화 되면서 보우소나루가 정치적으로 좋은 위치를 차지했다”면서 “일자리창출, 감세정책 등 보우소나루의 경제공약에 대해 국민들이 신뢰를 보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보우소나루 후보가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8일 헤알화 환율이 2.35% 떨어지고, 상파울루 증시는 4.57% 급등하는 등 시장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룰라 지운 아다지…막판 역전 가능할까
아다지 후보는 룰라 없이 치른 선거치고는 선전했다는 평가지만, 결선 투표에서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예측이다. 아다지 후보가 보우소나루 후보를 꺾기 위해선 1차 선거에서 보우소나루, 혹은 아다지 어느 쪽에도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표의 85%를 가져와야 하는데 쉽지 않은 도전이다. 특히 1차 투표에서 3위(12.47%)를 차지한 사민주의 성향의 민주노동당(PDT) 시루 고미스 후보자들의 지지를 끌어내야 하는데, 고미스 후보가 아다지 후보 지원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여론 조사에서도 보우소나루 후보의 대세론이 굳혀지는 추세다. 15일 여론조사 업체 이보페에 따르면 유효 투표자 기준 보우소나루 후보 지지는 59%. 41%인 아다지 후보를 여유 있게 앞섰다. 보우소나루 후보에 대한 반감(35%)보다 아다지 후보에 대한 반감(47%)이 더 큰 것으로도 나왔다. 이는 정치 부패에 연루됐으면서도 반성이 없는 노동자당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룰라 대통령의 지지층을 끌어들여야 하면서도 룰라 대통령과 차별화해야 하는 점도 아다지 후보의 숙제다. 1차 투표가 끝난 11일부터 아다지 후보 캠프는 ‘아다지가 곧 룰라’라는 문구를 쓰지 않고 있다. 우파의 공세를 차단하고 중간층을 끌어오기 위해 ‘중도적이고 타협적인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차별화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지난주 유세에서 아다지 후보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만 말했다. 김영철 부산외국어대 중남미학부 교수는 “룰라가 순조롭게 퇴진하지 못한 게 노동자당 후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증폭시켰다”면서 “룰라를 지지했던 브라질 민주화 세대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돌발 변수가 없는 한 결선투표에서 아다지 후보가 역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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