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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기를 멈추지 말라” 시한부 철학자의 마지막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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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기를 멈추지 말라” 시한부 철학자의 마지막 사유

입력
2018.10.18 04:40
수정
2019.04.04 09: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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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 ‘아침의 피아노’

철학자 고 김진영. 한겨레출판 제공ㆍⓒ이해수
철학자 고 김진영. 한겨레출판 제공ㆍⓒ이해수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군가는 책을 썼다. 임종 사흘 전, 의식이 지워지는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지난 8월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철학자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가 그랬다. 안색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병원에서 고인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7월이었다. “시간은 이제 내게 존재 그 자체”가 된 걸 받아들인 그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짧은 글을 썼다. 슬픔, 불안, 사랑, 사유가 농축된 진액 같은 글 234편이 산문집 ‘아침의 피아노’로 묶여 나왔다.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어지는 책이다.

평생 인간과 정신을 탐구한 고인에게 죽음은 마지막 텍스트가 됐다. 죽음이라는 눈으로 이전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보았다. 혼자 본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 책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고인은 끝까지 ‘선생님’이었다.

환자로 사는 것은 고인에게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었다. “소풍을 끝내야 하는 천상병의 아이처럼, 고통을 열정으로 받아들였던 니체처럼.” 아침 산책길에 풀을 보고는 “한 철을 살면서도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고 감탄했다. “자유란 무엇인가. 그건 몸과 함께 조용히 머무는 행복”이라고 되새겼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 –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고인은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기리며 쓴 ‘애도 일기’를 2012년 번역했다. ‘김진영의 애도 일기’는 희망을 기린다. 그는 삶의 명랑성을 지키려 애썼다. 원망하고 저주하는 대신 “생 안에는 자기를 초과하는 힘이 있음”을 믿었다. “슬퍼할 필요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한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출판사와 책 출간 계약을 하고 2주 만에, 저자의 말을 쓸 겨를도 없이 고인은 눈을 감았다. 몸이 허물어져서인지, 완벽하게 자유로워져서인지, 올 8월 들어 남긴 글 9편은 확연하게 짧아졌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 고인이 지상에서 남긴 마지막 글이다. 글은 235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책의 끝남은 고인의 생이 소멸했음을 조용히 알린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고인의 마지막 마음을 짐작하며, 누구라도 눈앞이 흐려질 것이다.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내가 끝까지 사랑했음에 대한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나는 깊이 병들어도 사랑의 주체다. 울 것 없다. 그러면 됐으니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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