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자유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음악이 가득한 제 인생을 충분히 즐기고 있어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음악을 놓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예술감독, NHK 심포니 수석지휘자,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명예지휘자, 신시내티 심포니 명예 음악감독 등 에스토니아 출신 지휘자 파보 예르비(56)가 이끄는 악단은 한 두 곳이 아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 악단도 앞다퉈 객원지휘자로 그를 찾는다. 올해 무대 위에서 지휘봉을 잡는 횟수는 101번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라는 별명을 가진 예르비가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찾는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11월 3일ㆍ예술의전당), 도이치 캄머필하모닉(12월 19일ㆍ롯데콘서트홀)과 잇달아 내한하는 예르비를 이메일로 만났다.
예르비는 각 악단의 강점을 끌어올리는 연주를 선보여 왔다. 오케스트라의 성격을 극대화해 보여주기 위해서 그는 선곡을 특히 중시한다. 한국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두 악단은 사이즈는 물론, 전통, 운영 시스템, 레퍼토리 등 모든 것이 다르다”며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은 고전과 초기 낭만 음악에 깊은 영향을 받아왔고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낭만 레퍼토리가 가장 주가 되는 오케스트라”라고 소개했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는 말러 교향곡 5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 이르는 낭만주의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지난해 예르비와 함께 녹음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음반으로 발매했던 조지아의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가 협연자로 나선다. 예르비는 내년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는 “15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오케스트라의 전통과 그들이 가진 다양한 레퍼토리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며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낼 음악적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파트너십은 “음악적인 신뢰와 인간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빛을 발한다.” 예르비는 2004년부터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을 이끌며 이 신뢰가 지닌 힘을 보여줬다. 그가 이끄는 동안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은 발매한 음반 중 3장이 에코 클래식 상을 수상하는 등 눈에 띄게 성장했다. 6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선보인 베토벤 전곡 연주는 베토벤의 표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로 악단의 색채를 보여줄 예정이다. 바이올린 여제로 불리는 힐러리 한이 모차르트 협주곡 5번을 연주한다.
예르비 가문은 에스토니아의 ‘국가대표 지휘자’ 산실이다. 올해 그라모폰어워드 공로상을 수상한 네메 예르비(81)가 파보 예르비의 아버지다. 남동생인 크리스티안(46)도 중부독일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다. 예르비가 아버지와 함께 2011년 만든 페르누 음악제는 에스토니아의 대표적 여름 축제로 꼽힌다. “저는 음악적 삶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모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저로 인해 혜택을 받는 것을 보는 것만큼 큰 기쁨은 없어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