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소비자 변화 못 읽어… ‘20세기 아마존’ 美 시어스 126년 만에 파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소비자 변화 못 읽어… ‘20세기 아마존’ 美 시어스 126년 만에 파산

입력
2018.10.16 17:42
수정
2018.10.16 20:24
2면
0 0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 위치한 폐쇄된 시어스 상점의 모습. 샌타모니카=로이터 연합뉴스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 위치한 폐쇄된 시어스 상점의 모습. 샌타모니카=로이터 연합뉴스

126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유통기업 시어스가 혁신 실패와 시간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미국 언론은 시어스를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정보기술(IT)기업 아마존에 비견하며, 한때 “모든 미국인이 쇼핑을 하던” 유통 업체의 최후를 전송했다.

시어스와 K마트의 모기업 시어스홀딩스는 15일(현지시간) 뉴욕 파산법원에 연방파산법 제11조에 따른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파산 계획의 일환으로 시어스는 현재 운영되는 687개 시어스ㆍK마트 지점 중 수익성이 없는 142개 지점을 폐쇄키로 했다. 나머지 가운데 대략 400여개 지점은 수익성이 유지되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서 매각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사서 루스 패링턴이 1900년대 여성 의상을 연구하기 위해 초창기 시어스 카탈로그를 들여다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사서 루스 패링턴이 1900년대 여성 의상을 연구하기 위해 초창기 시어스 카탈로그를 들여다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혁신으로 미국 최고 유통기업으로 성장

지금은 구 시대의 유물로 평가되지만 시어스도 전성기에는 가장 뜨거운 혁신 기업 중 하나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사설에서 시어스를 “그 시대의 아마존”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시어스와 아마존은 태동기에 유사성이 많다. 취급 품목이 점점 늘어났고 변화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적극 부응해 성공했다는 점 때문이다.

1893년 리처드 워런 시어스와 앨바 로벅이 손잡고 설립한 ‘시어스-로벅’사는 우편 주문 유통 사업체였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철도와 우편망이 미 대륙 전역을 연결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시어스는 이 네트워크를 유통업에 이용했다. 애초 시계와 귀금속만 취급했지만, 나중에는 옷과 인형부터 묘비와 건축 재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 때 등장한 게 판매상품 목록을 적어 두는 ‘시어스 카탈로그’다. 오늘날로 치면, 아마존의 상품 목록 페이지인 셈이다.

성장하던 시어스사는 1920년대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1차대전이 끝나고 찾아온 대공황으로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우편 주문 유통에 핵심 수요가 사라진 것이다. 위기의 시어스를 구한 것은 퇴역 장군 출신 로버트 우드였다. 미국 연방정부 통계를 집요하게 연구한 그는 미국의 도시화, 그리고 남부ㆍ서부로의 확장이라는 새 트렌드를 읽었다. 그의 운영기에 시어스는 도심 곳곳에 상점을 설치한 유통 체인으로 변모했다. 1925년 시어스의 첫 지점이 문을 열었다. 불과 4년만에 상점 수는 300개까지 팽창했다.

동시에 시어스는 철도 대신 자동차가 미국인의 활동에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점도 포착했다. 자동차 부품과 수리용 공구, 그리고 자동차 보험을 한 상점에서 팔아 대성공을 거뒀다.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 기업을 일신한 결과 시어스는 미국 최고 유통기업으로 반세기 동안 번영을 누렸다. 1970년대 시어스는 시카고에 거대한 본부 건물을 세웠고, 전성기에는 단일 기업인 시어스 매출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에 이르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라는 아마존의 매출도 2016년 기준 미국 GDP의 0.4%에 머무르고 있다.

20세기 초 시어스의 혁신을 이끈 로버트 우드(왼쪽) 시어스 회장과 줄리어스 로젠월드 이사장.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세기 초 시어스의 혁신을 이끈 로버트 우드(왼쪽) 시어스 회장과 줄리어스 로젠월드 이사장.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73년 5월3일 시카고 시어스타워 건설 현장을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모습. 시어스타워는 1973년부터 1998년까지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다. 현재는 매각돼 이름을 윌리스타워로 고쳤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73년 5월3일 시카고 시어스타워 건설 현장을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모습. 시어스타워는 1973년부터 1998년까지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다. 현재는 매각돼 이름을 윌리스타워로 고쳤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태의연한 운영ㆍ오판에 서서히 추락

1980년대 사세가 절정에 이른 시어스는 급기야 금융권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는 오판이었다. 한때 가장 뜨거운 혁신 기업은 소비자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막연하게 확장만 하면 기업 팽창이 계속될 것이라 믿는 구태의연한 기업이 돼 있었다.

당시 미국 인구의 중심은 도심에서 다시 근교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에 부응한 신흥 유통사 월마트가 등장했다. 더 싼 땅에 지점을 세워 더 낮은 급료로 직원을 고용하고 더 저렴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도 시어스의 몰락과 월마트의 성장에 기여했다. 시어스가 지점 운영을 각 지점 직원에 의존하는 동안, 월마트는 새로운 IT기술을 활용해 모든 상점의 거래 현황을 기록해 통계 처리하고 상점 운영에 반영했다. 통계를 통해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는 과거 로버트 우드의 지혜를 시어스 경영진 대신 경쟁사인 월마트가 이어받은 것이다.

1990년 월마트가 시어스를 제치고 미국 내 오프라인 유통의 최강자로 올라선 후, 시어스의 역사는 기나긴 몰락의 역사가 됐다. 신흥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 등의 성장이 결정타를 날린 것은 사실이지만, 시어스는 20세기 말부터 이미 계속 점수를 잃고 있었다. 2004년 헤지펀드 투자자 에드워드 램퍼트가 등장해 시어스를 인수하고 다른 할인매장 K마트와 합병하면서 잠시 기대감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시어스를 일으킨 ‘시어스 카탈로그’의 영광은 온라인 시대에 되살아나지 못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1985년 시어스가 금융분야에 진출하며 발행하기 시작한 디스커버 카드. 금융 부문 운영에 재미를 보지 못한 시어스는 1993년 금융 부문을 분리 독립시켰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5년 시어스가 금융분야에 진출하며 발행하기 시작한 디스커버 카드. 금융 부문 운영에 재미를 보지 못한 시어스는 1993년 금융 부문을 분리 독립시켰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4년 11월17일 뉴욕에서 개최된 K마트-시어스 합병 기자회견에서 에드워드 램퍼트(왼쪽) 당시 K마트 회장이 앨런 레이시 당시 시어스 최고경영자를 등진 채 비켜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시어스 경영자들은 시어스의 쇠락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4년 11월17일 뉴욕에서 개최된 K마트-시어스 합병 기자회견에서 에드워드 램퍼트(왼쪽) 당시 K마트 회장이 앨런 레이시 당시 시어스 최고경영자를 등진 채 비켜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시어스 경영자들은 시어스의 쇠락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어스홀딩스 매장 수 및 매출액 현황= 그래픽 강준구 기자
시어스홀딩스 매장 수 및 매출액 현황= 그래픽 강준구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