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쌍용차 파업, 2015년 민중총궐기 진압 당시 ‘경찰이 주최 측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하라’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외부 전문가 위주) 권고를 놓고 경찰 수뇌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경찰 내부 반발과 ‘업무상 배임’ 논란을 감안하면 취하가 어려운 반면 경찰이 스스로 출범시킨 조사위 권고를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권과 시민단체의 압박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권고 50일이 다 되도록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수뇌부가 고심하는 사안은 2심 법원에서 “경찰에 11억6,7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난 쌍용차 사건이다. 경찰은 2009년 5~8월 진압 당시 헬기와 크레인 등 장비 파손과 경찰관 120여명의 치료비 명목으로 쌍용차 노조 측에 16억6,900만원 손배소를 청구했고, 1심 법원(13억9,900만원)에 이어 2심 법원도 경찰 손을 들어줬다.
당시 손해를 세금으로 메운 상황에서 승소하고도 소를 취하하면 경찰 수뇌부는 물론 실무진까지 국고손실 및 업무상 배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경찰청 내부 의견이다. 실제로 경찰청이 법조계에 자문을 구한 결과,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게 다수 의견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취하 여부를 검토하는 실무진 사이에서는 “직이 걸린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가기관이 2심까지 승소한 상황에서 소를 취하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경찰로선 부담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국무회의 의결로 제주 해군기지 공사 지연에 따라 강정마을 주민을 상대로 낸 34억여원의 구상권 청구소송을 철회하긴 했지만 “강정마을 건은 공사 지연에 따른 피해로 직접적 손해도 없었고 통치행위로 해결한 점이 쌍용차 건 등과 다르다”는 게 경찰 입장이다. 자유한국당은 당시 국무회의를 주재한 이낙연 국무총리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런 가운데 조사위 권고를 수용하라는 여권과 청와대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지난달 17일 노조원을 만나 “소송 취하 문제에 대해 절차를 밟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전한 바 있고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당시 경찰 진압이 위법인 만큼) 경찰 명예와 국민 신뢰를 위해 취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2015년 민중총궐기 주최 측을 상대로 한 손배소는 피고인 민주노총 등의 요청에 따라 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경찰은 당시 버스 50여대 파손과 경찰관 90여명 부상을 이유로 3억8,000만원대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18일 열린 1차 조정은 “손해액을 받아야 한다”는 경찰과 “화해로 마무리 하자”는 민주노총 간 이견으로 결렬, 오는 30일 2차 조정 기일이 예정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과잉진압이었다고 해도 피해가 명백하기 때문에 손해액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등이 공탁금 1억원을 걸어둔 점을 감안하면 1억원 정도는 배상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사위 권고에도 머뭇거리고 있는 경찰의 입장은 쌍용차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 이후 확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민 청장은 11일 국감에서 “현재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데 경찰이 법 집행기관인 만큼 법리와 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돼야 한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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