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하다 실패한 뒤 그나마 남은 자금으로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고 있다. 공모주 개인 배정을 축소하면 이를 통해 생계를 지탱하는 서민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모주 개인배정 축소(폐지)건에 대한 철회 요청’ 국민청원의 내용이다. 청원인은 “공모주는 개인 배정분을 더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당국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모주 개인배정 축소에 대한 반발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열린 자본시장연구원 컨퍼런스에서 “주식 배정 과정의 공적 규제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게 발단이 됐다. 그 동안 투자금융(IB) 업계에서 일반 투자자에 대한 공모주 비중을 줄여 달라고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최 위원장의 언급은 사실상 공모주 개인배정 축소를 공식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재 공모주는 일반투자자에게 20%, 우리사주조합에 20%, 고위험고수익투자신탁에 10%가 각각 우선 배정된다. 코스닥 상장사는 여기에 코스닥벤처펀드 몫 30%가 추가된다. 이들 투자자의 청약 미달분을 포함한 잔여 물량이 기관투자자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기관투자자 몫은 전체 공모주의 20~50%에 그치고 있는 셈인데, 업계 입장에선 이를 늘리는 게 지상 과제다.
그러나 공모주는 개인투자자들에겐 사실상 ‘수익 보증수표’,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다. 컨설팅 업체 IR큐더스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코스피ㆍ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종목의 공모가 대비 시초가 상승률은 평균 38.29%를 기록했다. 시초가는 공모가 대비 -10~+100% 범위에서 결정된다. 올해 신규 상장 종목 41개 중 시초가가 공모가보다 낮은 종목은 단 6개에 불과했다. 공모가의 두배에 시초가가 결정된 종목도 7개나 됐다.
이 때문에 수익이 보장된 공모주 청약엔 개인투자자가 항상 구름처럼 몰린다. 실제로 올해 상장된 종목의 공모주 평균 경쟁률은 588.15대1이나 됐다. 공모주 일반청약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배정받고자 하는 수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대금을 청약 증거금으로 내야 한다. 평균 공모가가 1만7,00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 투자자는 1억원을 증거금으로 냈을 경우 단 20주(34만원 상당)만 배정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투자자 물량을 더 줄인다고 하니 개미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한 개인투자자는 “일반 개인투자자의 자율적 행위를 부당하게 훼손하고 기관투자자와 같은 독과점적 중개기관을 우대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선 기관투자자에게 더 많은 물량을 배정하는 게 상장 후 기업 주가 흐름 측면에서 더 안정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공모주 투자에 나서는 일반투자자들은 대부분 청약으로 배정받은 물량을 상장 후 곧바로 팔아 버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기관투자자는 공모주 물량을 더 배정받기 위해 2~25주 가량 주식을 팔지 않는다는 의무보유 확약을 한 경우가 많다.
증시 일각에선 개인투자자와 슈퍼개미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없잖다. 공모주 청약 경쟁률이 워낙 높아 소액 투자자들에게는 실효성이 없고, 투자 규모가 수십억원대인 슈퍼개미들의 배만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당국은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금융위는 당정 협의를 거쳐 당초 이날 발표할 계획이었던 자본시장 혁신과제 추진방안을 국정감사가 끝나는 26일 이후로 연기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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