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가구 중 가처분소득을 2년 간 단 한 푼 쓰지 않고 빚을 갚는데 모두 써도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가구가 30% 선을 넘어섰다. 정부도 대출자의 소득 대비 부채 상환능력을 따지는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200%를 초과한 가구의 비중이 2014년 28.0%에서 지난해 32.9%로 4.9%포인트 증가했다.
처분가능소득은 근로나 사업 등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경상소득)에서 세금과 이자지급 등 비소비지출은 뺀 뒤 이전소득(연금 등)은 보탠 것으로, 한 가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말한다. 금융부채를 보유한 가구 10가구 중 3가구는 본인이 실제 쓸 수 있는 돈을 2년간 모아도 빚을 상환할 수 없는 수준이란 이야기다.
반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100% 이하여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가구 비중은 같은 기간 52.5%에서 45.9%로 하락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처분가능소득은 4,118만원, 평균 금융부채는 4,998만원이었다.
이번 자료는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전국 2만 가구를 표본으로 매년 조사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가공해 추출됐다. 권동휘 한국은행 과장은 “시중은행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고신용ㆍ고소득 고객 위주로 금액이 크더라도 대출을 늘리고, 시중은행에서 대출 받기 어려운 저소득ㆍ저신용 고객들은 카드사나 대부업체 등으로 몰리면서 소득 대비 부채 비중이 높은 가구가 급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자산이 많지 않은 저소득층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당국은 은행의 대출 심사시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높은 고위험 대출자를 면밀히 심사하도록 유도하고 취약 차주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이달부터 대출자의 소득 대비 상환능력을 따지는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규제를 은행 성격에 맞춰 차등 적용하는 등 본격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전날 DSR 시행과 관련, “고(高) DSR 기준을 2개 이상으로 둘 것”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고DSR 기준을 70%와 90% 두 가지로 둘 경우 70% 이상을 전체 은행 대출의 20% 이내로, 90% 이상을 10% 이내로 설정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그는 “고DSR을 70% 한 개 수치로만 규정하면 120%를 넘는 (훨씬 위험한) 대출을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특수은행에도 차별화된 DSR 규제 기준을 둘 것”이라고 예고했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은행 DSR 실태분석 결과를 보면 은행 평균은 71%지만, 시중은행은 52%, 지방은행은 123%, 특수은행은 128%로 큰 편차를 보였다.
최 위원장은 다만 서민과 취약차주에 대한 대출이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조항을 두기로 했다. 기존 사잇돌대출 등 서민금융상품과 300만원 이하 소액 대출 등은 DSR 규제의 예외로 둘 계획이다. 금융 당국은 18일 고DSR 기준 등 시행 세부사항을 공개한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