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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거스르다…가을이 깃든 ‘근대路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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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거스르다…가을이 깃든 ‘근대路의 여행’

입력
2018.10.16 18:00
수정
2018.10.16 18: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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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토성마을 ‘골목정원’에 화사하게 가을이 내려 앉았다. 집집마다 키우던 화분을 내놓는 것으로 시작한 골목정원이 입소문을 타면서 허름하던 마을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대구=최흥수기자
달성토성마을 ‘골목정원’에 화사하게 가을이 내려 앉았다. 집집마다 키우던 화분을 내놓는 것으로 시작한 골목정원이 입소문을 타면서 허름하던 마을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대구=최흥수기자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포크 밴드 ‘자전거탄 풍경’의 가사처럼 그 골목에선 곧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릴 듯하다. 인구 250만의 광역시 대구 도심엔 유난히 좁은 골목이 ‘보물’처럼 많이 남아 있다. 여느 도시처럼 대구도 고층 아파트가 야금야금 도심을 잠식하는 중이어서 골목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지고 있다.

◇별을 품은 골목정원 달성토성마을

달성공원은 대구의 대표적인 도심공원이다. 1905년 공원으로 지정됐고, 일제강점기에는 신사(神社)가 들어서기도 했다. 1970년에는 동물원이 들어서 현재 코끼리와 침팬지 등 포유류 100여마리와 조류 3,300여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 공원에는 경상감영의 정문이던 관풍루, 국내 최초의 시비인 이상화 시비, 대구에서 순교한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동상, 의병장 허위 선생 순국기념비, 이곳을 중심으로 세를 떨쳤던 달성 서씨 유허비 등이 남아 있다. 대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구향토역사관도 함께 있다. 아름드리 나무가 풍성해 시민들에게는 허파 같은 존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달성공원은 달성토성(土城)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달성토성은 2000여년 전 삼한시대 부족국가가 쌓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으로 알려졌다. 하늘에서 보면 모서리가 뭉툭한 별 모양이다. 토성의 높이는 4~10m, 둘레는 1.3km에 달한다. 성곽 위 산책로는 여전히 흙길이어서, 콘크리트에 굳은 도시인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인다.

달성공원 뒤편에서 보면 토성의 모습이 한층 선명하다. 달성토성마을에서도 공원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나 있다.
달성공원 뒤편에서 보면 토성의 모습이 한층 선명하다. 달성토성마을에서도 공원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나 있다.
달성토성마을 입구의 안내판.
달성토성마을 입구의 안내판.
이렇게 좁은 골목이 마을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좁은 골목이 마을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다.
달성토성마을 벽화는 자극적이지 않아 오히려 좋다.
달성토성마을 벽화는 자극적이지 않아 오히려 좋다.

정문 반대편 비산동으로 내려가면 토성의 면모가 한결 선명하다. 최대 15m 높이에 비스듬하게 경사진 성벽이 그대로 드러난다. 성벽 아래 비산동에는 1~3층 규모의 주택이 빼곡하게 밀집해 있다. 비산동은 염색공단이 있어 한때 대구 경제를 이끌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낙후된 지역으로 남고 말았다. ‘산이 날아 온(飛山)’ 이 지역을 달구벌의 뿌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현재의 서구 비산4동, 내당2ㆍ3동 일대에는 200~5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배층 무덤 87기가 있었다. 일제시대에 확인된 것만 이 정도이니 논밭 경작이나 개발로 사라진 것까지 포함하면 100기는 족히 넘었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이른바 `달성고분군’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남아 있는 봉분이 없다. 일제강점기에 인근에 서문시장을 만들 때, 연못을 메우기 위해 무덤을 모조리 파갔기 때문이다.

도심의 낡은 주택가에 불과하던 이곳이 최근에 ‘달성토성마을’로 재정비하면서 다시 날갯짓하고 있다. 집 안에 있는 화분을 골목으로 꺼내 놓으면서 시작한 ‘골목정원’이 마을 전체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심재생사업인데,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더 기대되는 곳이다.

담장의 자투리에도 작은 화분을 내놓은 모습.
담장의 자투리에도 작은 화분을 내놓은 모습.
포도넝쿨에 복사꽃이 피었다.
포도넝쿨에 복사꽃이 피었다.
달성토성마을의 전봇대에 매달린 고양이그림.
달성토성마을의 전봇대에 매달린 고양이그림.
달성토성마을 안내판. 위를 날뫼북춤으로 장식했다.
달성토성마을 안내판. 위를 날뫼북춤으로 장식했다.

출발점은 ‘인연의 시작’이라고 쓴 좁은 골목이다. 다소 뜬금없지만 둘이 나란히 걸어보면 안다. 서로 어깨를 맞대거나 손을 꼭 잡아야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비좁다. 골목을 따라가며 오래된 집 담벼락에는 ‘비산’의 옛 이름을 딴 ‘날뫼북춤’, 지역 경제의 큰 몫을 담당했던 직조공장 변천사와 비산의 유래 등을 알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되도록 원색을 피해 요란스럽지 않은 게 특징이다. 그래서 여느 벽화마을처럼 지독한 ‘가난 팔이’나 ‘추억 몰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달성토성마을의 주인공이 벽화가 아니고 정원인 까닭이기도 하다.

골목정원 입구 가로등도 할미꽃 모양으로 만들어 세웠다.
골목정원 입구 가로등도 할미꽃 모양으로 만들어 세웠다.
마을 카페에선 주민들도 부담 없도록 커피가 1,500원.
마을 카페에선 주민들도 부담 없도록 커피가 1,500원.
마을 카페에선 커피콩빵도 판매한다.
마을 카페에선 커피콩빵도 판매한다.

요리조리 휘어진 골목을 통과하면 길은 여러 갈래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정해진 동선이 없다. 눈길 끄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걸으면 된다. 낮은 지붕 아래에 작은 화분을 내놓은 집도 있고, 비좁은 마당이 터질 정도로 꽃을 가꾼 집도 있다. 이 가을에 가장 눈부신 골목은 국화 화분으로 장식한 ‘골목정원’이다. 사이사이에 보랏빛 짙은 과꽃도 섞여 있다. 가을 향기 물씬 풍기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성벽 남측 담장에서 북측까지 이동해 있다. 그사이 마을에서 유일한 일방통행 도로인 토성 뒷길(국채보상로 83길)로 몇 번씩 들락날락하게 되는데, 지겹지 않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토성마을 다락방’ 카페에서 1,500원짜리 커피로 목을 축여도 좋다. 커피콩 모양의 빵도 판매한다.

◇청라언덕 넘으면 시인의 집과 과거길…근대골목투어

대구의 골목길은 때로 찻길보다 빠르고 효율적이다. 대로를 따라 이동할 때보다 질러가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는 ‘근대路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5개 코스의 골목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산선교사 주택에서 시작하는 ‘근대문화골목’ 2코스는 대구의 중심을 관통한다.

동산선교사 주택은 제중원(현 동산의료원)과 교회를 설립한 선교사들이 살던 곳으로 현재 스윗즈주택(선교박물관), 블레어주택(역사박물관), 챔니스주택(의료박물관) 등이 남아 있다. 동산(東山)은 달성토성의 동쪽에 위치한 산을 이른다. (대구에는 이외에도 단순한 지명이 많다. 도심 앞에 있는 ‘앞산’, 대구읍성 서쪽의 ‘서문시장’, 읍성 북측의 ‘북성로’ 등이 그렇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청라언덕으로 오르는 입구의 3ㆍ1만세운동 벽화.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청라언덕으로 오르는 입구의 3ㆍ1만세운동 벽화.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
선교사주택 옆에는 대구 사과의 시초가 된 3세목 능금나무가 자라고 있다.
선교사주택 옆에는 대구 사과의 시초가 된 3세목 능금나무가 자라고 있다.
청라언덕에서 계산동으로 이어지는 3ㆍ1만세운동길.
청라언덕에서 계산동으로 이어지는 3ㆍ1만세운동길.

선교사 주택 주변은 동산이라는 이름처럼 아담하게 꾸몄는데, 푸른(靑) 담쟁이(蘿) 넝쿨이 얽혀 있는 ‘청라언덕’이라 부르기도 한다. 박태준이 작곡한 가곡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그 청라언덕이다. 노랫말은 계성학교를 다니던 박태준의 학창시절 로맨스를 듣고 이은상이 썼다고 한다. 언덕 한편에 노래비가 서 있다. 스윗즈주택 옆에는 1899년 동산의료원 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들여와 대구 사과의 시초가 된 능금나무가 자라고 있다. 현재 3세 자손 나무에는 빨갛게 열매가 익어 가을 정취를 더한다.

청라언덕에서 계산오거리로 내려오는 90계단은 ‘3ㆍ1만세운동길’이다. 3ㆍ1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도심으로 모이기 위해 통과했던 솔밭길이었다. 지금은 야간 조명까지 해놓아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이기도 하다. 길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1902년에 지은 계산성당이다. 대형 건물과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여 고만고만해 보이지만, 주변에 초가집만 있던 당시 사진을 보면 단연 돋보이는 건물이었다.

계산성당은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가미된 건물로,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계산성당은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가미된 건물로,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계산성당 인근 담벼락의 모자이크. 초가집만 있는 마을에 성당 건물만 우뚝하다.
계산성당 인근 담벼락의 모자이크. 초가집만 있는 마을에 성당 건물만 우뚝하다.
계산성당 뒤편 이상화와 서상돈 고택으로 가는 골목.
계산성당 뒤편 이상화와 서상돈 고택으로 가는 골목.
이상화 시인 고택은 그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이상화 시인 고택은 그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성당을 끼고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담장에 중절모를 쓰고 멋을 부린 남성이 그려져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이상화(1901~1943) 시인이다. 골목 안쪽에는 그의 옛집(사망한 곳으로 알려졌다)과 서상돈(1850~1913) 고택이 나란히 있다. 서상돈은 대구의 거부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도심 한가운데에 이런 공간이 남아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바로 옆 고층 아파트에 가려 다소 옹색하게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서상돈 고택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 위에 세워졌다.

영남대로 과거길, 대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다.
영남대로 과거길, 대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다.
도심골목이 된 영남대로는 진한 한약 냄새가 풍긴다.
도심골목이 된 영남대로는 진한 한약 냄새가 풍긴다.

고택을 빠져나가면 길은 ‘영남대로’로 이어진다. 동래에서 문경새재를 거쳐 한양까지 이어지던 과거길이다. 그 당시는 대로였겠지만 지금은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골목길이다. 골목 좌우 담장은 과거를 보러 떠나거나 급제하고 돌아오는 장면 등의 그림으로 장식했다. 주변에 약재상과 한약방이 밀집해 있어, 골목길에 풍기는 그윽한 향기만은 과거를 보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하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갑자기 대형 건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현대백화점이다. 바로 옆은 대구백화점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던 동아백화점이다. 대구 최초의 잡화점인 ‘반월당’의 명성을 외지의 대형 백화점에 내어 준 셈이니 자존심이 상할 만하다. 도심 골목의 무수한 이야깃거리도 그렇게 끝이 난다.

◇여행메모

▦달성공원과 달성토성마을은 대구도시철도 3호선 ‘달성공원역’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달성토성마을에도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달성토성 둘레길 북쪽 입구의 인동촌시장은 ‘아나고 먹자골목’으로 유명하다. ▦근대문화골목 2코스는 3호선 ‘서문시장역’에서 가깝다. 1ㆍ2호선 환승역인 ‘반월당역’에서 반대방향으로 걸어도 무방하다. 대구 중구청에서 매주 토요일 골목투어(2회), 셋째 주 목요일은 맛투어, 금요일은 야경투어를 진행한다. 053-661-2625로 문의. ▦대구시는 가을여행주간(10월 20일~11월 4일)에 ‘대구미식회‘ 이벤트를 진행한다. 11개 먹거리골목, 빵집, 꿀떡, 찜갈비 등 ‘먹방BJ’들이 선택한 음식점과 서문시장, 수성유원지,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등 스탬프투어 운영지에서 참여할 수 있다. 2곳 이상 방문 후 가을여행주간 홍보물에 스탬프를 찍으면 관광안내소에서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대구=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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