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여성병원’ 제일병원이 설립 55년 만에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제일병원은 이미 지난달 15일부터 분만실을 축소 운영하고 있고, 임신부들에게도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하고 있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병원 측에서는 복수의 인수희망자들과 인수협상을 하고 있지만 매각이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는 부정적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때 산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병원 중 하나였던 제일병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차 원인은 ‘저출산’에 있다는 게 의료계 안팎의 관측이다. 1970년에 태어난 아기는 무려 100만명 가량이었으나 지난해는 겨우 35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병원측이 이런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같은 여성전문 병원이지만 일찌감치 난임 분야를 개척해 수익성을 높인 차병원과 달리 제일병원은 저출산으로 분만 건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1970~80년대처럼 계속 분만 위주의 운영을 계속했다. 실제 제일병원 분만환자 수는 2012년 6,808명에서 지난해 4,202명으로 5년 만에 38% 감소했다.
2005년 뒤늦게 여성암센터, 건강검진센터, 임상연구소 등을 설립하며 연구개발(R&D) 투자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다른 병원이 다 자리 잡은 분야였다. 1,100억원에 이르는 과도한 부동산 매입 비용도 발목을 잡았다. 제일병원 인수협상에 참여했던 대학 관계자는 “제일병원은 분만에 강점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만큼 산후조리원이나 난임 등 관련분야를 특화했어야 했는데 여성암센터 등 이미 타 병원에서 특화된 분야에 뒤늦게 뛰어들어 실적을 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2005년 삼성에서 분리되면서 병원 브랜드 가치가 하락한 것도 쇠락을 앞당겼다는 평가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삼성제일병원이라는 브랜드를 환자들이 높게 샀는데, 지방의대 협력병원으로 전락되자 병원 브랜드 가치가 떨어졌다”며 “의대가 없는 개인병원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제일병원 설립자 고(故) 이동희 박사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촌으로 이씨의 유언에 따라 무상으로 삼성의료원에 경영권을 넘겨 삼성제일병원으로 운영됐지만, 2005년 삼성에서 분리된 후 지방의대 협력병원으로 전전했다. 인수 협상에 참여한 또 다른 관계자는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더라도 설립자 가족이 분산 보유하고 있어 회생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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