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할 사람이 없어 폐업하는 기업이 일본에서 속출하고 있다. 저출산ㆍ고령화가 심화한 일본 산업계의 새로운 풍속도다. 아베노믹스에 따른 호황에도 불구, 인력 부족에 따른 인건비 상승이 영세ㆍ중소기업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15일 산케이(産經)신문에 따르면 올해 1~9월 인력 부족을 이유로 도산한 일본 기업은 299곳에 달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이달 중 지난해 수준(317곳)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13년부터 시작한 이 조사는 2015년 340곳으로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올해 400곳 안팎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도산에 따른 기업의 부채총액도 이미 9월 현재 417억엔(약 4,228억원)에 달해 연말에는 550억엔(약 5,576억원)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도산 이유로는 “종업원을 구할 수 없다”, “인건비가 급등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대다수였다. 태양광 발전시스템을 설계하는 진테크니컬은 “공사 수요는 증가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더 이상 대응할 수 없어 포기했다”고 밝혔고, 세이콘포운수는 “운전기사 부족을 배경으로 한 인건비 상승 부담이 컸다”고 밝혔다.
도산한 기업은 자본금 1,000만엔(약 1억134만원) 미만의 영세기업이 55.8%, 자본금 1,000만엔~1억엔(약 10억1,391만원) 미만 중소기업이 43.8%를 차지했다. 부족한 인력을 대체할 자동화 설비투자가 어려운 영세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들 기업 중 일부는 종업원을 붙잡아 두려고 무리하게 임금을 인상하다가 운전자금 융통에 어려움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일본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총 인구는 1억2,642만명으로 이 중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7,543명(59.7%)이었다. 이는 해당 조사 이후 처음으로 60%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생산가능인구는 1994년 총 인구의 64.95%를 기록한 이후 계속 감소하면서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반면 일본 내 외국인 근로자는 지난해 약 128만명으로 국내 노동력 인구 감소와 맞물려 최근 5년간 거의 두 배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내년 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체류자격을 도입, 숙련 기능인력에 대해선 가족을 포함한 영주를 허용할 방침이다.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기업 입장에선 한숨을 돌릴 수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 증가는 비정규직 등 국내 근로자에 대한 임금상승 억제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노동집약형 영세기업이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해 생존할 경우 생산성 향상이나 장기적인 일본 경제에 활력이 되기도 어렵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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