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소중하지만 힘든 경험이다. 새 생명을 맞이한 기쁨도 잠시. 나의 끝없는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를 마주할 때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쉴 새 없이 밀려든다. 몇 년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급증하고 있는 ‘육아 웹툰(육아툰)’은 어느 날 누군가의 부모가 돼 버린 이들이 써 내려간 육아 기록이다. 육아툰은 ‘아이가 처음 무릎으로 길 때(패밀리 사이즈)’ ‘등에 업힌 아이가 아까 먹은 짜장면이 맛있었다고 읊조리던 순간(유부녀의 탄생)’과 같은 소소한 일상은 물론 ‘아이랑 노는 게 재미가 없어 미드(미국드라마)를 보고 싶어지거나(썬비의 그림일기)’ ‘밥을 빨리 먹지 않는 아이를 답답해하는(그림에다)’ 부모의 자기 고백을 담담하게 그린다. 그래서 육아툰은 육아일기이자 부모로서의 성장일기다. 육아서에 등장하는 모범 답안이 아니라 평범한 부모들의 현실 육아기라 더 재미있는, 육아툰을 그리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림에다’의 심재원
‘육아휴직을 하면 내 시간이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하나, 완벽한 착각이었다. 두 살배기 하나 보는데, 치열한 광고 회사보다 더 바빴다. ‘아빠 육아툰’의 1세대, ‘그림에다’의 심재원(41) 작가 얘기다. 원래는 휴직 기간에 회사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휴직을 하니 애에 빠져서 회사는 생각이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회사 대신 육아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거죠.”
매일 밤 잠들기 직전, 오늘 하루 기억에 남는 아들과의 순간을 메시지와 함께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광고업계 종사자 특유의 관찰력 때문일까. 입소문을 타고 2, 3개월 만에 페이스북 구독자가 1만명이 늘었다.
SNS 스타만 된 것이 아니었다. 가장 변한 건 그 자신이었다. “예전엔 아이를 봐도 덤덤했어요. 스파게티 먹는 아이를 보면서도 아마 그전이라면 ‘왜 이렇게 많이 흘리지’ 했을 거예요. 그런데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이후엔 바닥에 닿지 않는 아이의 발이 먼저 눈에 들어 왔어요. ‘저 발이 닿으면 함께할 날이 많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육아툰을 그린 지, 벌써 4년. 이 작업으로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그 사이 휴직을 하고 가족들 모두 ‘육아 선진국’인 핀란드에서 1년간 살고 돌아와 핀란드의 육아법을 그림과 글로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벌였다. 거창한 정책이 아닌, 핀란드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지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최근엔 14년간 일한 광고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SNS 육아 콘텐츠 제작자로 나섰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빠 육아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심 작가는 “제가 어쩌다 보니 ‘아빠 육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맨 앞에 서 있게 됐다”면서 “아이의 성장 과정을 함께하는 아빠들이 많아지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패밀리사이즈’의 남지은 김인호
아들 셋, ‘아들 부잣집’에 막내딸이 태어난다. 이거 실화다. 부부 웹툰 작가인 남지은(38), 김인호(38) 작가가 네이버에 연재하고 있는 ‘패밀리사이즈’는 실제로 11세, 10세, 8세, 5세 아이 넷을 키우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옮겼다.
남 작가는 막내를 임신한 2014년, 육아 웹툰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족 계획상으로 넷째가 마지막이어서 지금 아니면 평생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패밀리사이즈는 좋아하는 대상에 모조리 스티커를 붙이고, 집 전화에 비밀번호를 걸어 놓고는 홀랑 잊어버리고, 엄마의 말투를 똑같이 따라 하는 등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흔히 겪을 법한 일들을 부모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만화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행동과 기발한 표현이 독자들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매 화 마지막 컷엔 주인공 사남매의 실제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 작가는 “엄마가 되어보니 너무 힘들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들이 많더라”며 “그 소중한 시절이 금방 잊히는 게 아쉬워서 다들 육아 만화를 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부부는 아이 넷을 모두 홈스쿨링으로 키운다. 네 명의 아이들과 24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에피소드가 부족할 틈이 없다. 넷째가 태어난 이후를 그린 시즌2는 최근 300회를 넘었다.
남 작가는 독자들의 육아 선배로도 종종 나선다. 그는 “육아 웹툰을 시작하고 많은 엄마 독자들한테 상담 메일이 온다”며 “만화로 육아 고충이나 아이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서로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했다.
◇’유부녀의 탄생’ 김환타
다음에 연재되는 ‘유부녀의 탄생’은 작가가 결혼 준비부터 임신과 육아 전반을 직접 경험하며 느낀 바를 그려낸 웹툰이다. 2013년 시작한 시즌 1에선 결혼 준비, 시즌 2는 임신, 시즌 3은 돌 때까지의 육아에 대해 그렸다. ‘네 살까지의 육아’를 다룬 시즌 4는 얼마 전 끝났다.
김환타라는 필명으로 웹툰을 연재하는 김미경(38) 작가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겪은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화로 풀었던 게 시작이었다”며 “누구나 당연한 일들로 여기는 결혼 임신 육아를 만화로라도 미리 경험할 수 있게 하면, 누군가는 그 일이 자기한테 닥쳤을 때 덜 당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품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육아툰의 인기 비결로 “(자신들이 못 냈던) 목소리를 내주는 것”을 꼽았다. 그도 겪어보지 않고는 몰랐던 문제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보인다고 했다. 유부녀의 탄생에서 다뤘던 ‘맘충’이란 에피소드엔 그의 이런 목소리가 담겼다. “사회적으로 당연히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안 끼치게 항상 격리되고, 잘 안 보이는데 수납돼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저도 한 때는 맘충으로 불릴까 무서워서 외출했을 때 애가 울면 손으로 입을 막고, 뭘 떨어뜨리면 물티슈로 닦기 바빴던 때가 있었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맘충이란 차별적인 단어, 그 잘못된 단어로 불리지 않기 위해 내가 노력하는 게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 작가는 이런 맥락에서 자신과 같은 전문 작가 외에도 개인 SNS에 육아툰을 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육아툰을 통해 서로 공감을 얻고, 공감해주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육아연대”라며 “본인의 고충이나 감정을 개인의 문제로 끝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썬비의 그림일기’의 썬비
‘#육아동지’. 2016년 썬비(필명∙36)가 인스타그램에 처음 육아툰을 올리며 달았던 해시태그다. 출산과 육아에 지쳐가던 그는 그저 ‘기분 좋게 잠들고 싶다’는 생각에 아기가 잠이 들면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육아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시작된 ‘썬비의 그림일기’는 아이가 세 살이 된 지금, 약 3년간의 기록만 1,000개가 넘게 쌓였다. 그는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한 순간,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기록하려 했다”며 “그리는 저도,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덕분에 조금 덜 힘들게 육아를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썬비는 소위 말하는 ‘인스타툰’을 처음 시도한 1세대다. 원래 IT 기업에서 모바일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인스타그램이 한국에 막 상륙했을 때부터 부부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려 올렸고, 임신을 하고 나선 자연스레 임신과 출산, 육아로 소재가 옮겨 갔다.
썬비의 그림일기는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육아 일과를 차분하게 그린다. 엄마가 밥을 하는 동안 식탁 위에 장난감 자동차를 잔뜩 올려 놓는 아이의 행동이나 어린이집 문 앞에서 유독 아이를 놓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엄마의 어떤 날들이 꾸밈 없이 종이 위에 담겼다. 그는 “사람들은 특별할 게 없는 일상에 가장 공감한다”며 “’우리 애는 왜 밥을 잘 안 먹지’ 같은 소재가 육아툰에선 가장 인기 있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다’의 이은영
연년생 형제를 키우는 내용의 육아툰, ‘나는 엄마다’를 다음에서 연재하고 있는 이은영(32) 작가는 원래 웹툰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다. 그는 둘째를 낳은 이후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참이었다.
그러던 중 블로그에 무심코 올린 육아 고충이 그를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이 작가가 둘째를 낳은 지 6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혼자 애를 보다 지쳐 직장에 있는 남편에게 ‘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야’라고 메시지를 보냈던 에피소드를 그려 올렸던 게 발단이었다.
그는 “그 당시엔 육아 웹툰이라 하면 다들 ‘엄마라서 행복해요’ ‘아이는 축복이에요’ 이런 게 대부분이던 때고 나처럼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반응이 좋았다”며 “그때는 키보드만 누르면 술술 한 서린 절규가 나왔다 (웃음)”고 회상했다.
그는 얼마 안 있어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작품을 연재하는 ‘다음웹툰리그’로 옮겨 그림을 올렸고 2014년 말, 리그에서 우승하며 웹툰 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그렇게 2015년 3월부터 정식 연재된 나는 엄마다는 얼마 전 100화를 넘겼다. 그는 그가 그린 수 많은 순간 중 첫째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았던 ‘손톱’이란 제목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이가 동생이 생기고 나서 손톱을 계속 물어뜯더라고요. 제가 둘째에게 항상 양보를 강요하다 보니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생긴 거였어요. 예전처럼 둘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자 그제서야 손톱이 자라더라고요.”
그에게 육아 웹툰은 삶의 터닝 포인트이자, 부모 간의 육아연대기다. 그는 “독자들이 제가 아파서 연재를 쉬면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런 상황을 다 이해해 준다“며 “댓글들을 보면, ‘맘 카페’나 ‘맘 커뮤니티’를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 ‘밀키베이비’의 김우영
육아툰 ‘밀키베이비’를 그리는 김우영(34) 작가는 카카오의 UX(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로 일하는 8년 차 워킹맘이다. 그는 새벽 출근 길, 버스 안이나 지하철 속에서 다섯 살 딸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2016년 ‘나는 아마 외로움을 낳아서 안고 있는 걸지도’라는 짤막한 글과 아이를 안고 있는 자신을 그린 게 그의 첫 육아툰이었다. “출산 초반에 느끼는 감정 대부분이 외로움이거든요. 아이는 말이 안 통하고, 벽을 보는 것 같고, 나도 어른의 말을 하고 싶고. (웃음) 그런 느낌을 표현했어요.”
‘나 너무 외로워’라고 하는 게 나약해 보이거나 투정 부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역시 그만 그런 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나도 그렇다’며 쏟아진 공감은 그가 육아툰을 계속 그릴 수 있도록 하는 용기가 됐다.
초반엔 아이와 지내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느낌을 주로 그렸지만 최근 들어선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여성의 삶에 대해 더 자주 그리게 된다고 했다. 그는 카페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수다 떠는 엄마들에 대한 그 어떤 곱지 않은 시선에 관해, 누군가는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우리네 명절 문화에 대해, 임신을 해서 야근을 하지 않는 그에게 ‘프로답지 않다’고 했던 상사를 향해 그림과 글로 질문을 던진다.
김 작가는 “사회 문제를 가장 피부로 느끼는 세대는 아이를 기르는 세대”라며 “저도 그중 한 사람으로서 더 열심히 그림과 글로 목소리를 내고, 생각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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