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6세 교황과 엘살바도르의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암살 당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등 7명이 가톨릭 교회의 성인 반열에 올랐다. 환영과 축하 물결이 일고 있지만, 과거 대비 시성(諡聖ㆍ성인으로 선언하는 것)이 남발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시성식을 열고 바오로 6세와 로메로 대주교를 새로운 성인으로 추대했다. 독일 수녀 마리아 카테리나 카스퍼 등 18~19세기 서유럽 태생 5명도 포함됐다. 1963년부터 1978년까지 재위한 바오로 6세는 라틴어 미사를 폐지하는 등 교회의 광범위한 개혁을 이끌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한 당사자로,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로메로 대주교는 1970년대 후반 엘살바도르에서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1980년 3월 미사 집전 도중 암살 당했다.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구현에 앞장서 종파를 초월해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AP통신은 “5,000명의 엘살바도르 신자들이 시성식을 보기 위해 로마로 직접 왔으며, 엘살바도르에서는 수만 명 인파가 큰 화면으로 시성식을 보기 위해 하루 전부터 몰려 들어 밤을 새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교황청이 성인 만들기에 급급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성인 반열에 오르려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적 사례가 확인돼야 하는데, 시성 방침을 정해놓고 절차를 진행하다 보니 과거 대비 시성이 남발된다는 주장이다. 실제 시복(諡福ㆍ모범적 신앙인을 복자로 인정하는 것) 전에 기적이 확인돼야 하고, 복자가 된 뒤 다시 기적이 추가 확인돼야 성인으로 추대하는 게 가톨릭 교회의 원칙인데, 교황 재량으로 일부 절차를 생략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94~1914년 66명 교황 중 3명만 성인으로 추대됐으나, 최근에는 20세기 재임한 교황 중 대부분이 성인으로 추대됐다”고 전했다.
최근 불거진 사제 성추문 은폐와 관련,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성급하게 성인 반열에 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사망(2005년) 9년 뒤 성인이 됐는데, 생전 성추문 문제에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WP는 “가톨릭 교회가 성추문 문제를 수십 년간 은폐해왔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최근 대부분 교황이 성인으로 추대 받는 분위기”라며 “교회가 스스로를 곤란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크리스토퍼 벨리토 킨대 역사학과 교수도 “이렇게 서둘러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교황 사후 50~75년 정도는 기다려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물론 반론도 나온다. 요한 바오로 2세에 관한 책을 쓴 브로드지미에시 레드지오흐는 성추문 사건을 보고 받고도 침묵했다는 의혹에 대해 “말년 건강이 악화된 시점에 주요 결정을 직접 내리지 않았을 순 있지만, 문제에 직면했을 때 회피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해당 주장을 반박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추대에 관여한 한 바티칸 내부 인사도 WP에 “실시된 모든 검증은 성인의 행동의 진실성을 보여준다”고 옹호했다.
채지선 기자 letm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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