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산악인의 표상’ 김창호(49) 대장의 사고 소식에 한국 산악계가 큰 슬픔에 잠겼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가진 힘 만으로 산에 오르고 싶다”고 말해왔던 김 대장은 무산소 무동력에 최소의 도움만 받아 모험적 등반을 시도하는 알파인 스타일을 고집했고, 등정의 결과 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국내 대표적인 ‘등로주의(登路主義)’ 산악인이었다. “가장 성공한 원정은 안전한 귀가”라며 ‘집에서 집으로(From Home To Home)’를 좌우명으로 삼고 항상 완벽한 준비로 도전을 해왔던 김 대장이기에 이번 사고의 충격이 크다.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코리안웨이 원정대’ 대원들이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원정 도중 목숨을 잃었다. 주 네팔대사관과 아시아산악연맹 등에 따르면 김 대장이 이끄는 한국 원정대 9명은 신루트 개척을 위해 지난달 28일 네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군의 구르자히말 원정에 나섰고 12일 눈폭풍에 휩쓸려 실종됐다. 시신은 다음날 발견돼 14일 구조요원에 의해 수습됐다. 희생자는 김 대장을 포함해 유영직(51ㆍ장비 담당), 이재훈(24ㆍ식량ㆍ의료 담당), 임일진(49ㆍ다큐멘터리 감독) 등 공식 원정대원 4명과 현지에서 합류한 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 그리고 네팔인 셰르파 4명 등 모두 9명이다. 갑작스러운 눈 폭풍에 휩쓸리면서 급경사면 아래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엄홍길 대장은 “믿어지지 않는다. 꿈이길 바란다”면서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라며 애도했다.
경북 예천 출신의 김 대장은 1988년 대학 신입생(서울시립대 무역학과) 때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그가 산악인으로 본격 이름을 알린 건 2005년 이현조(2007년 사망)와 함께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215m) 루팔벽을 오르면서다. 이탈리아 출신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74)가 1978년 동생과 함께 처음 올랐던 이 루팔벽은 벽 길이가4,700m가 넘는 세계 최장 길이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이다. 메스너도 당시 동생을 잃었고 이후 그곳을 다시 오른 건 김 대장이 처음이다. 김 대장은 이후 메스너를 좇아 고정 캠프나 다른 등반대가 설치한 고정 로프, 심지어 산소 기구도 사용하지 않은 채 정상까지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알피니즘을 추구해왔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건 고 박영석 대장과 엄홍길 대장 등에 이어 국내 6번째이지만 무산소로 이를 처음 완수한 주인공은 김 대장이다. 2013년 5월 에베레스트(8,848m)까지 7년 10개월 6일이 걸렸다. 이는 세계 최단기간 완등이자 세계 최단기간 무산소 등정기록이다.
특히 14좌 중 마지막 봉우리인 에베레스트는 무동력으로 해발 0m인 바다에서부터 출발한 도전이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보통 해발 2,800m인 루크라까지는 항공기로 가는데, 김 대장은 인도 벵골만 해발 0m부터 베이스캠프(5,360m)까지 카약(160㎞)과 자전거(1,000㎞), 도보(150㎞)로 이동했다.
2012년 네팔의 가장 높은 미등정봉 힘중(7,140m)를 등반해 황금피켈상 아시아상을 수상한바 있는 김 대장은 지난 해 강가푸르나(7,455m) 남벽에 신 루트를 개척한 업적으로 황금피켈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산악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황금피켈상이 김 대장의 알피니즘을 기린 것이다.
김 대장은 ‘등산 이론가’로도 기억된다. 뛰어난 글솜씨는 물론, 히말라야 연구에 매진해 지형 특성 등 관련 자료를 가장 많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선우 등산교육원장은 “(김 대장이) 내겐 산악인 후배지만 기술적인 면은 물론, 이론적으로도 탄탄한 훌륭한 등산가”라며 “귀국 후 등반의 본질에 대해 함께 연구 발표하기로 약속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주위 동료와 선후배를 끔찍이 챙기는 ‘의리남’이기도 하다. 2007년에는 다른 원정대 소속의 옛 동료였던 이현조의 추락 사고 소식에 “기회는 다시 온다”며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을 코앞에서 포기하고 사고 수습에 나섰다.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을 찾기 위해 네팔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특히 2013년 5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하다 서성호 대원이 숨진 사고는 오랜 기간 김 대장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는 귀국 기자간담회에서 “해냈다는 뿌듯함과 동료를 데리고 오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며 동료를 잃은 슬픔을 전했다.
2007년 김 대장은 동상으로 양 손의 손가락을 잃은 김홍빈(54) 대장(당시 대원)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도왔다. 최근엔 김홍빈 대장이 잇단 고산 등반으로 자주 코피를 쏟으며 힘들어하자 그의 정밀 건강 검진을 직접 주선하기도 했다. 김홍빈 대장은 “창호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도, 가슴에 와 닿지도 않는다”면서 “그간 전인미답의 산행 길을 개척하면서 너무나 힘들었을 테니 이제는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쉬었으면 좋겠다”며 말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