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고 하면 본인 침낭을 주던 분이었는데…”
4년 전 한국외대 산악회 50주년을 기념해 임일진(49) 다큐멘터리 감독과 네팔 루굴라 원정에 동행했던 이창희(29)씨는 임 감독의 사고 소식에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임 감독은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등반을 촬영하기 위해 김창호 원정대에 참여했다가 변을 당했다.
이씨는 루굴라 원정 당시 대장이던 임 감독을 ‘배려심 넘치는 리더’로 기억했다. 이씨는 “하루는 베이스캠프가 너무 추워서 나도 모르게 ‘춥다’고 혼잣말했더니 형(임 감독)이 ‘네 침낭을 한 번 써보고 싶으니 오늘은 내 침낭이랑 바꿔서 자자’고 했다”라며 “언제나 주변사람을 챙기고 베푸는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원정이 끝나고 등산장비가 남자, 비싼 장비를 구입하기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기도 했다. 이씨는 “이번 구르자히말 원정이 끝나면 오랜만에 찾아가려고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산악인 5명이 히말라야에서 운명을 달리하자 산악계 전체가 큰 슬픔에 빠졌다. 특히 이들과 과거 등반을 함께했던 산악인들은 갑작스런 비보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원정대를 격려하기 위해 캠프를 방문했다가 사고를 당한 정준모(54)씨 사연도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한국산악회 이사이자 중소기업 대표인 정씨는 전문산악인은 아니지만 수년간 한국산악회를 후원하며 이끌어온 인물이다. 한국산악회 활동 중 정씨를 만난 이모(61)씨는 “등산장비업체나 방송국 후원이 최근 줄어드는 추세에 정씨가 큰 도움을 줬다”라며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하는 게 아니라, 산악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있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정씨는 이번 원정을 촬영하는 임 감독의 산악다큐영화 ‘히든밸리’ 제작도 후원하고 있었다.
원정대원 유영직(51)씨의 후배 산악인으로 2014년 매킨리 원정, 2015년 춤부 원정 등을 함께했던 신승철(46)씨는 유씨를 ‘원정대에서 없어선 안 될 사람’으로 기억했다. 신씨는 “일반 등반, 암벽 등반은 물론 스포츠 클라이밍도 잘하는 ‘탑 클라이머(최고 등반가)’로 어려운 코스마다 선봉에 섰다”라며 “선후배를 잇는 가교 역할을 도맡았고, 요리도 잘해줬다”고 말했다. 또 “한 번은 지진으로 등반이 취소되자 네팔 쿰중에 있는 학교까지 가서 남은 식량을 기부하고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등 선행에 적극적이던 선배”라며 아쉬워했다.
지난해 ‘2017 코리안웨이 인도 원정대’에서 김창호 대장은 물론, 올해 구르자히말 원정대 막내 이재훈(24)씨와 함께 등반했던 구교정(26)씨는 지난달 초 이씨와의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고단한 원정 중에도 갈등 한 번 없었을 정도로 잘 통했고, 구씨가 고산병이 났을 때 이씨가 대신 텐트 정리를 해주는 등 도움을 주고받았다. 구씨는 “(이씨가) 대구로 찾아와 같이 저녁식사를 하던 중 올해 원정에도 참여한다고 하길래 ‘즐거운 등반하고 오라’고 말했다”라며 “처음엔 ‘추정’이라고 보도가 나와 사고가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는데 안타깝다”고 비통해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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