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오후 10시 서울 강남경찰서 112상황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에서 난데없이 남성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비상상황이 벌어진 것이라 판단한 경찰은 즉시 ‘코드원(Code1ㆍ최우선 출동이 필요한 신고)’을 발령하고, 위치를 추적해 신사동 한 포장마차로 인근에 있는 경찰관을 출동시켰다.
경찰을 맞이한 건 술에 거나하게 취한 40대 남성 두 명이었다. 어이없어 하는 경찰에게 이들은 “예전(2012년)에 있었던 우웬춘 사건 이후로 지금은 비명만 질러도 경찰이 출동한다고 하기에 정말인지 아닌지 내기 삼아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을 경범죄처벌법상 허위신고 혐의로 입건하고, 즉결심판(경미한 범죄에 대한 약식 재판)에 넘겼다.
경찰의 도움이 긴급히 필요할 때 이용하는 112에 대한 허위 장난 신고가 줄지 않고 있다. 진짜 출동하는지 궁금해서 혹은 심심하던 차에 재미 삼아 전화를 걸고, 때로는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 신고를 하는 전화가 112상황실로 끊임없이 접수되고 있다.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허위ㆍ장난ㆍ오인 신고로 경찰이 잘못 출동한 건수는 214만건으로 집계됐다. 연 평균으로 하면 42만7,023건, 하루 1,170건 꼴로 경찰력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한 사람이 100~200건 가까이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전화하기도 하는데 응대를 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경찰력 낭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은 “화장실 문이 잠겼다고, 또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고 112에 신고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경찰청은 올 4월 1일 만우절을 즈음해 허위나 장난 신고를 할 경우 바로 입건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도’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112 허위 신고는 경범죄처벌법 혹은 형법상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처벌할 수 있고, 경찰력 낭비에 다른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그러나 ‘장난인데 설마 처벌까지 하겠어’라는 인식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소 의원은 “허위 및 장난 신고에 대한 강력한 처벌뿐만 아니라 대국민 홍보 및 교육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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