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1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다. 이번 조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 최고위층 수사의 중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검찰에 따르면 2012년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연이어 지낸 임 전 차장은 지난 6월 수사가 시작된 이래 여러 의혹 정황이 드러날 때마다 실무 책임자로서 이름이 빠지지 않고 거론됐다. 대표적으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과 전국교직원노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를 둘러싼 소송 개입 의혹이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뜻대로 강제징용 소송 판결을 늦추는 등의 대가로 법관 해외파견을 얻어내고, 이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이 청와대와 외교부를 드나들며 조율한 정황을 잡았다.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를 둘러싼 소송과 관련해서도 법원행정처가 고용노동부 측 재항고이유서를 대신 써주는 등 그는 주요 행위 과정에 관여한 인물로 꼽힌다. 이 밖에도 △2016년 11월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청와대 부탁을 받고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동원해 직권남용죄에 대한 법리검토를 해준 의혹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 특허소송 개입 의혹 △법관 사찰 의혹 등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의 핵심은 임 전 차장 혐의 입증뿐만 아니라 윗선 개입을 증명하는 데 있다.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윗선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ㆍ고영한ㆍ차한성 전 대법관이다. 검찰은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서 2014년 10월 박 전 대법관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만나 소송에 관한 논의한 정황을 포착했다. 박 전 대법관은 박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의 특허소송 정보를 청와대에 전달하게끔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선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등과 관련해 개입한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 전 대법관 역시 강제징용 소송을 놓고 2013년 12월 청와대ㆍ정부 관계자 회동에 참석해 박 전 대통령 지시를 전달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재판 개입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핵심 실무 책임자인 임 전 차장이 윗선 지시나 교감 없이 행했겠느냐는 게 검찰의 의심이다.
따라서 임 전 차장이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해 어떤 소명을 하는지에 따라 수사 향방이 갈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임 전 차장이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거나 자기 선에서 ‘꼬리 자르기’식 입장을 취한다면 윗선을 향해야 하는 검찰로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미 전ㆍ현직 판사들이 법관 사찰 등 여러 의혹에 있어 임 전 차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을 한 만큼 그를 사법농단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며 “하지만 강제수사 등 윗선 수사가 원활하지 못했던 검찰 입장에선 임 전 차장 입을 통해서만 윗선 지시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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