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위 암인 대장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돼 4기(말기)가 되면 5년 생존율이 0%에 가까워 대부분의 환자가 치료를 포기한다. 그런데 ‘종양감축술 후 복강 내 온열항암화학요법(HIPECㆍHyperthermic Intra-Peritoneal Chemotherapy, 이하 하이펙)’이 큰 효과를 나타내면서 4기 대장암 환자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하이펙은 개복한 뒤 대장암 덩어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면서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환자 복강에 고온(42도 정도)으로 가열한 항암제(마이토마이신)를 90분 정도 직접 뿌려줘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치료법이다. 암세포가 일반세포보다 열에 약하다는 점에 착안해 온열요법과 전통적 항암제 치료법을 수술과 접목한 일종의 ‘하이브리드 수술법’이다. 난소암에 쓰이는 항암제(파클라탁셀)의 1,000배 효과를 보인다. 하이펙은 수술이 매우 복잡하고 10시간 이상 걸린다.
2014년 7월 하이펙을 국내 첫 도입해 벌써 272례 시행한 백승혁(47) 강남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기존 치료법으로 근치적 수술이 불가능했던 4기 대장암도 하이펙으로 3분의 1가량 치료할 수 있는 혁명적인 치료법”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특히 “하이펙 치료법을 쓰면 대장암의 일종으로 충수돌기에서 생기는 ‘복막 가성점액종(위점액종)’을 100%가까이 고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복막 가성점액종은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이 사망해 유명해진 병이다.
백 교수는 ‘하이펙 개발자’인 폴 슈거베이커 미국 워싱턴DC 조지타운대 의대 종양외과 교수에게 정식으로 이 치료법을 배워 이 분야에서 아시아의 최고 명의로 자리잡았다. 백 교수는 최근 98세 된 가성점액성 낭종증 환자에게 하이펙을 성공적으로 시행하기도 했다. 그가 2014년 7월 처음으로 하이펙을 시행한 50대 4기 대장암 환자는 지금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백 교수의 수술실력도 아주 빼어나다. 빠르고 정확한 수술로 유명한데, 국내외 대장 수술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한 라이브 수술에서 빠른 수술 속도로 3배속 녹화 화면이라는 오해를 살 정도였다. 이런 수술실력 덕분에 최고난이도를 꼽히는 하이펙 수술에 성공할 수 있다.
백 교수는 최근 국내 최초로 하이펙의 항암제 흡수율을 높이는 방법(지용성 특성을 지닌 관류액을 이용한다)을 동물실험으로 입증해 지난 9월 가장 저명한 국제적인 외과종양학술지(Annals of Surgical Oncology)에 게재한 데 이어 같은 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복막암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백 교수는 “4기암도 수술한 뒤 항암치료를 받으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생존기간이 평균 4개월가량 늘어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4기 대장암은 수술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깨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하이펙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지만 환자 입장에서 보면 최근 젊은 층의 암 발생과 복막전이가 많아지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하이펙 치료를 택하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백 교수는 “대장암은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대장내시경을 하지 않는 한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며 “기름진 음식과 붉은 색 고기, 과음. 흡연 등은 피하고,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 등을 많이 먹는 것이 대장암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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