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꼽히는 이들은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그리고 안창호이지 않을까? 이승만, 이회영,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특히 일제강점기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생각하면 더없이 마음이 시리다. 민족독립을 누구보다 간절히 소망했었을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안창호, 이회영, 신채호는 광복을 끝내 보지 못했다.
1932년 안창호는 윤봉길 의거가 일어난 날 상하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국내로 압송돼 3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투옥됐다. 건강이 악화된 그는 경성제국대학병원에 옮겨졌다가 1938년 3월 결국 세상을 떠났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에 발을 들여 놓았던 그는 40여 년 동안 민족독립 추구와 독립국가 건설이란 한 길만을 걸어왔다.
안창호는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였고, 교육자이자 사상가였다. 그는 독립운동은 물론 독립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른 독립운동가와 비교해 안창호는 교육과 청년을 중시했다. 그가 창립을 주도했던 흥사단은 오늘날에도 시민단체의 하나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안창호는 과거의 인물인 동시에 현재의 인물이기도 하다.
◇안창호의 생애와 사상
안창호는 1878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났다. 구세학당에 다녔고 독립협회에 들어가 독립운동에 발을 내딛었다. 19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났고, 거기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됐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귀국해 신민회를 조직하고 평양 대성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운동과 교육운동을 펼쳤다. 1911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하고 흥사단을 창립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안창호의 독립운동에서 전환점을 이룬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출범한 임시정부에서 안창호는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를 맡았다. 그는 3개 임시정부(상하이, 한성, 대한국민회의)의 통합을 추진했고, 통합 임시정부에선 노동국총판에 취임했다. 그의 구상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외국과 동맹을 맺어 독립운동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있었다.
안창호의 생애와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저작들은 많다. 흥사단 홈페이지에는 주요한의 ‘안도산전서’, 장리욱의 ‘도산의 인격과 생애’, 안병욱의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 이광수의 ‘도산 안창호’가 소개돼 있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는 2001년 총14권으로 이뤄진 ‘도산안창호전집’을 내놓았다.
여기서 주목하려는 책은 1973년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도산 안창호 논설집’이다. 안창호가 펼쳤던 논설과 연설들을 모은 저작이다. 이광수의 서문과 최남선의 발문이 달려 있다. 이 책은 1970년대 초반에 출간된 만큼 주요한ㆍ안병욱의 저작과 함께 안창호의 사상을 알리는 데 작지 않게 기여했다.
안창호의 사상을 이 짧은 글에서 모두 다루기는 어렵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국민주권과 준비론에 관한 그의 생각이다. 먼저 국민주권에 대해 안창호는 말한다.
“우리의 권능은 세 가지 있소. (...)우리가 우리 주권을 잃고 사는 것은 죽은 것만 못함이오, 그러므로 우리는 최후의 핏방울까지 흘려 이것을 찾아야겠소. (...)한반도 위에 모범적 공화국을 세워 2천만으로 하여금 천연의 복락을 누리려 함이오. (...)우리가 신공화국을 건설하는 날이 동양 평화가 견고하여지는 날이요. 동양 평화가 있어야 세계 평화가 있겠소.”
1919년 6월 이뤄진 연설 ‘내무총장에 취임하면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안창호가 강조하려는 것은 민주공화국 정신이었다. 1919년 4월 11일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었다. 민주공화국이란 개념은 귀족공화국에 대비되는, 그 주권이 바로 국민에 있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이렇듯 국민주권은 안창호 독립운동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사상적 거점이었다.
◇안창호 독립사상의 의의
안창호의 독립사상에서 주목할 또 하나는 이른바 ‘준비론’이었다. 준비론은 독립운동 전선을 정비해 결정적 시기에 대비하자는 논리였다. 이 준비론은 일제와 타협하는 소극적 노선이 아니라 실력을 양성함으로써 독립전쟁을 주도하자는 적극적 노선이었다. 실력 양성을 위해 안창호는 민족혁신을 주목했고, 이 민족혁신을 위해 ‘무실(務實)ㆍ역행(力行)ㆍ충의(忠義)ㆍ용감(勇敢)’이라는 자기개조를 강조했다.
안창호의 사상에 대해선 그 동안 비판이 없지 않았다. 안창호는 타협적 점진주의자였고, 이러한 노선은 결국 친일파로 귀결됐다는 게 그 핵심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안창호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그 구체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 대해 반론이 제시됐다. 안창호가 준비와 실력양성만 강조한 게 아니라 독립투쟁과 전쟁 또한 주장했다는 게 그 핵심이었다. 안창호가 남긴 논설과 연설을 두루 고려할 때 안창호의 독립사상에는 준비론과 투쟁론이 결합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9년 6월 그는 “원망도 말고, 시기도 말고, 딴 집 세우지 말고, 무슨 일을 당하든지 지금은 다만 한 곳으로 모여 돈을 모으고, 통일ㆍ외교ㆍ전쟁 세 가지를 잘 해나자”고 말했다. 안창호는 민족통일전선을 위한 사상으로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주창하기도 했다.
안창호의 독립운동은 정치ㆍ경제ㆍ문화ㆍ언론을 망라한다. 역사학자 이명화에 따르면, 독립협회 관서지회, 공립협회, 국민회, 미주 대한신민회, 국내 신민회, 대한인국민회, 대한적십자회, 시사책진회, 한국노병회, 한국독립당, 공립신보, 독립신문(상하이판), 동광, 점진학교, 평양 대성학교, 상하이 인성학교, 난징 동명학교, 북미 클레어몬트 학생양성소, 태극서관, 청년학우회, 흥사단, 흥사단 원동임시위원회, 동우회,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가 주도하거나 참여했던 조직들이었다.
안창호의 독립운동은 태평양 양쪽 모두에 걸쳐 있었다. 역사학자 윤병석이 지적하듯, 안창호는 국내에서 애국계몽운동을, 미주에서 민족운동을, 중국에서 민족독립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운동들에 헌신했던 안창호의 사상은 민족독립을 위한 민족주의와 국민주권을 위한 민주주의를 양 축으로 삼았다. 시대정신의 관점에서 안창호가 남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올바로 계승하고 새롭게 혁신하는 것은 21세기 현재 중대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청년의 미래
안창호가 심혈을 기울인 것 가운데 하나는 청년운동이다. 그는 청년학우회를 결성했고, 이를 계승하는 흥사단을 창립했다. 1913년 이국 땅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의 자주독립과 번영을 위해 출범한 단체가 흥사단이었다.
“우리 단의 목적은 무실역행으로 생명을 삼는 충의남녀(忠義男女)를 단합하여 정의(情誼)를 돈수(敦修)하며 덕(德)ㆍ체(體)ㆍ지(智) 삼육을 동맹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지으며 신성한 단체를 이루어 우리 민족 전도번영(前途繁榮)의 기초를 수립함에 있다.” 흥사단 약법 제2조다. 이 내용은 안창호가 직접 작성한 것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이처럼 안창호는 독립운동과 건국사업에 헌신할 지도적 인물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운동과 청년운동을 주창하고 실천했다.
청년이 나라의 미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청년의 미래가 현재 대단히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우리사회에선 몇 해 전부터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삼포(연애ㆍ결혼ㆍ출산 포기) 세대’, ‘사포(삼포 + 취업 준비로 인한 인간관계 포기) 세대’, 나아가 ‘오포(사포 + 내 집 마련 포기) 세대’라는 말이 유행해 왔다. 청년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청년세대의 고통에 기성세대의 책임이 작지 않다는 데 있다. 그 핵심 문제 중 하나인 청년실업에서 기성세대는 면책되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가 어렵더라도, 이 역시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듯 대응하기 나름이라고 봐야 한다.
청년은 미래 100년을 이끌어갈 주역이다. 주역은 밀쳐두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순 없다. 청년세대가 상처 입었다면 위로하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당연한 책무다.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는 것은 안창호 사상의 핵심을 이룬다. 안창호 사상이 갖는 또 하나의 현재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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