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태풍에 쓰러진 400년 신목…마을공동체 복원 계기되길

입력
2018.10.14 10:00
0 0
태풍 콩레이에 쓰러진 조천읍 와흘본향당 팽나무. @강정효
태풍 콩레이에 쓰러진 조천읍 와흘본향당 팽나무. @강정효

제25호 태풍 콩레이가 제주지방에 많은 피해를 남기고 물러갔다. 특히 강풍과 함께 한라산 윗세오름에 737.5mm를 비롯해 어리목 649.5mm, 산천단 488.0mm, 오등동 457.5mm 등 많은 비를 뿌리며 피해를 키웠다.

태풍 콩레이의 강력한 바람으로 쓰러진 나무도 많은데, 그중에는 제주인의 신앙을 상징하는 신당의 신목(神木)도 있다. 제주도 지정문화재인 '민속자료 9-3' 조천읍 와흘본향당의 팽나무가 이번 태풍에 쓰러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400년 수령의 팽나무 두 그루가 우람하게 그 위용을 자랑하는 와흘본향당은 규모에서 제주도 최고의 신당으로 꼽힌다.

1994년 와흘본향당에서 열린 당굿 장면. @강정효
1994년 와흘본향당에서 열린 당굿 장면. @강정효
와흘본향당 당굿에 진설한 제물들. 1995년. @강정효
와흘본향당 당굿에 진설한 제물들. 1995년. @강정효

이들 팽나무는 1982년부터 보호수로 지정, 보호돼 왔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4월 15일에는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됐지만 팽나무의 수난은 그 직후부터 시작됐다. 문화재로 지정된 지 한 달도 안 돼 신목 한 그루가 강풍으로 가지가 부러지는 참변을 당한 것이다. 당시 행정 당국이 정비작업을 벌이고자 했으나 신의 노여움을 우려한 인부들이 작업을 거부하는 사태마저 발생했다. 결국 예산 300만원을 투입, 심방(무당)이 나서서 굿을 한 뒤에야 부러진 가지의 제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제주 특유의 신앙심이 여전히 발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 지역에서 기도를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생각지도 않은 불상사가 발생한다. 지전과 물색 등 소박하게 제물을 바치는 제주의 전통 방식과는 달리 육지에서 온 무속인들이 오방색 천으로 나뭇가지를 감싸면서 문화의 왜곡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2009년 1월에는 무속인들이 방치한 촛불이 오방천에 옮겨 붙으며 화재가 발생, 신목이 고사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결국 2014년에는 팽나무 한 그루의 밑동이 썩어 죽고, 남아있던 한 그루마저 이번에 쓰러진 것이다.

제주에서 본향당(本鄕堂)은 마을의 토지를 보호하고, 마을 사람들의 출생과 사망을 관장하는 본향당신이 머무는 공간이다. 신을 형상화한 신체(神體)로는 신목과 신석, 석함, 신혈, 신상, 위패 등이 있는데, 신목은 신이 타고 내려오는 나무이자, 신의 우주로 상징된다. 신목 중에는 팽나무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와흘 한거리 하로산당’ 또는 ‘노늘당’이라고도 불리는 와흘본향당의 당신(堂神)은 제주도 신당의 뿌리인 구좌읍 송당본향당의 당신인 백주또와 소천국의 11번째 아들인 백조도령이다. 백조도령은 와흘리에 사는 서정승의 딸과 혼인했다. 이들 부부신을 모신 제단은 신목의 남쪽과 동쪽 구석 두 곳에 설치돼 있다.

팽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던 모습. 1998년. @강정효
팽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던 모습. 1998년. @강정효
2006년 와흘본향당 풍경. 외지 육지 무속인이 들어와 오방색 천을 두르는 문화 왜곡이 발생했다. @강정효
2006년 와흘본향당 풍경. 외지 육지 무속인이 들어와 오방색 천을 두르는 문화 왜곡이 발생했다. @강정효

와흘본향당에서는 매해 음력 1월 14일과 7월 14일에 당굿이 열리는데, 1월에는 신과세제(新過歲祭)를 올리고, 7월에는 마불림제를 한다.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기에 당신은 산신으로 형상화되는데, 한 해 운수를 점치는 ‘산받음’과 액운을 막는 액막이로 끝나는 다른 마을과는 달리 굿의 말미에 산신을 위해 벌이는 산신놀이까지 진행한다. 당굿을 앞두고 미리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데, 굿이 열리는 날이면 마을 부녀자들은 아침 일찍 대로 만든 바구니인 구덕에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단에 진설한다. 당굿이 열리는 날이면 마을을 떠나 외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까지 빠짐없이 참가하는데 예전에는 200명 이상이 몰려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다른 마을의 경우 신당은 부녀자들만 찾고 남자들은 포제단에서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酺祭)를 지내는데, 와흘리의 경우는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당굿에 참여한다.

그렇게 마을의 구심체 역할을 해왔던 본향당의 상징이 이번에 쓰러진 것이다.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이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현재 마을에서는 대체 수목 이식 등 대안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 과정이 마을공동체의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