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실언에 새삼 자질론 불거졌지만
트럼프 결례 책임까지 떠넘기는 건 사대주의
올해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무능(無能)이 새삼 드러났다는 탄식이 들린다. 현안 파악, 정무적 판단, 국정 방향 이해 등 장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능력이 모두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3무(無)’다.
강 장관의 실언 사실은 분명하다. 10일 외교부 대상 외교통일위원회 국감 자리에서 그는 5ㆍ24 조치와 금강산 관광 간 연관성을 오인해 야당에게 책잡혔고 결국 사과했다. 북한 관광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발생 두 달 뒤에 발표된 5ㆍ24 조치가 우리 정부의 독자적 행정 조치라는 사실을 거칠게 이어 붙이다 벌어진 사달 같다. 자질이 모자라다는 빈축의 빌미를 줬다.
강 장관 자질론이 불거진 건 이미 지난해 국감 때다. 비(非)외시에 김대중 대통령의 통역관이라는 출신과 다자(多者)외교 분야에 편중된 이력이 선입견을 부추긴 데다 취임 초기여서 실제 북한ㆍ북핵 문제에 대한 학습이 덜 된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적폐가 주요 쟁점이 되면서 유야무야 지나갔다. 다행이었다.
그랬는데 올해까지 아직 뭘 잘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아무리 출장이 잦고 장관이 모든 사안의 디테일을 다 알 수는 없다 해도 주요 현안과 관련해서는 적어도 틀리지 않은 답변을 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의원의 질문이 잘못됐으면 바로잡아줄 수 있을 정도까지 파악 수준을 올려 놓는 게 장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 싶다.
더욱이 5ㆍ24 조치 관련 정부 입장은 그가 굳이 대답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통일부가 주무 부처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이 얽혀 있어 인화성 강한 쟁점에 강 장관이 불을 놔버리는 바람에 이튿날 통일부 대상 국감에서 조명균 통일장관이 진화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파장을 예측할 만한 눈치가 강 장관에게 부족하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 매도 분위기에 편승해 합당해 보이지 않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의 통화 내용 공개가 그렇다. 물론 한미 간 알력이라는 치부를 북미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지 않은 시기에 앞뒤 재지 않고 무모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었느냐는 점에서 강 장관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질책도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숨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동맹이라도 이견 없는 국가 사이 관계는 없다. 외교부 내에서 엇갈리지 않는 강 장관 평가는 그가 솔직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데 나쁘지 않은 캐릭터다.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게다가 군사합의에 대한 지난달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전 폼페이오 장관의 불만 토로는 자국 정부 내 혼선에서 비롯된 일이다. 동료 장관에게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대뜸 동맹국 카운터파트한테 언성부터 높인 것이다. 경솔함으로 치면 폼페이오 장관이 먼저인 셈이다. 강 장관 발언에 대한 반응 격인, “한국은 미국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시간 11일 새벽 발언은 주권 침해 소지마저 있는 명백한 외교적 결례다. ‘미국 말 안 듣더니 꼴 좋다’거나 ‘쓸데없는 짓 하다 동티났다’는 식으로 강 장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미측 무례를 호도하는 건 사대주의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동맹을 해치는 성급한 행동이라 싸잡혀 욕을 먹고 있는 강 장관의 ‘핵 신고 우회론’도 터무니없는 제안은 아니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의 평가다. 그런 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 총회 계기 방미 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전한 북미 협상 중재안과 어긋나는 방안일 리도 없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후 KBS 인터뷰에서 이미 한 번 같은 내용을 말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정황 증거다. 청와대는 강 장관의 독자 제안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반복된 언급이 청와대와 조율을 거치지 않은 결과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미국이 워낙 완강해 죽이 맞는 척하고는 있지만 북한 비핵화의 촉진을 위해서는 대북 제재 완화라는 유인책도 쓸 필요가 있다는 게 문 대통령 생각이다. 유엔 총회 기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핵화 상응 조치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제재 완화를 그 중 하나로 거론하기도 했다. 남북 경제협력으로 소진된 한국의 성장동력을 되살리겠다는 게 문 대통령 구상의 고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각을 세우기 곤란한 문 대통령 대신 강 장관이 총대를 메고 ‘천기누설’을 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렇다면 되레 청와대 해명과 반대로 국정 방향을 소개하는 게 강 장관의 몫일 수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멤버이기도 한 강 장관이 청와대의 독식 욕심으로 핵심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믿기도 어렵다.
정권을 견제하는 입장에서 보면 강 장관에게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더 잘 하라는 채찍질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한반도에 봄이 오느냐 마느냐가 좌우될 중대한 비핵화 대화 국면이다. 북핵 주무 장관을 정쟁 도마에 올리는 일은 자제하는 게 옳다. 격려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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