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 차원의 디지털 성범죄 대책이 발표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가해자 처벌도, 피해자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여주기 단속에만 치중했을 뿐 정작 피해자 지원은 생색내기에 그쳤고, 형량 강화는 아예 이뤄지지도 않았다.
12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4월 설치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상담 받은 피해자 1,550명 중 수사ㆍ법률 지원까지 이어진 경우는 109명, 의료 지원을 받은 사람은 38명에 불과했다. 직원 16명 모두 상담이나 유포 영상 삭제업무 담당이고, 다른 분야 전문인력이 따로 없어 종합적인 지원이 불가능한 탓이다.
5개월간 온라인에 유포된 불법 촬영물 1만5,003건을 삭제한 성과가 있긴 하다. 다만 이조차 삭제 요청 급증으로 최근엔 이틀에서 나흘은 기다려야 삭제 지원이 가능한 상태다. 순식간에 퍼지는 온라인 특성상 한시가 급한 피해자들에겐 삭제 건수라는 결과물보다 삭제 속도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면,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실제로 헤어진 애인이 성행위 영상을 지인들에게 유포해 피해를 당한 리벤지 포르노(비동의 유포 음란물) 피해여성 A씨는 “올해 상반기 지원센터에 상담을 요청했는데, 1심 판결을 앞둔 이번 달이 되어서야 경찰 신고를 돕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황당해했다. A씨는 수 차례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당했음에도, 제대로 된 수사 법률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해 사설 디지털 장의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그렇다고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무거워진 것도 아니다. 물론, 처벌 강화에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나, 대책 발표 1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책 발표 당시 정부는 ‘촬영 동의 여부’와 상관 없이 최대 징역 5년으로 처벌하고, 피해자가 누구인지 특정되거나 영리 목적으로 영상을 유포한 경우에는 벌금형 없이 징역으로만 처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올해 4월 발의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은 “법 체계를 고려해 양형 조정에 신중하자”는 반대 의견에 부딪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원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갖추지 않은데다, 올해 안으로 이를 수립할 계획 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직 처벌 사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라며 “내년도 양형 변경 검토 대상으로 삼을지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6년간 불법 촬영 범죄에 대한 1심 판결 중 실형 선고가 8.7%에 불과한 상황이라, 당분간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실형 선고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리벤지 포르노 가해자들이 오히려 “신고해 봤자 벌금이나 집행유예 정도”라며 피해자를 협박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10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리벤지 포르노라는 명칭과 그 폐해를 직접 언급하며 징역 3년의 이례적인 엄벌을 내리는 등(본보 11일자 10면) 하급심 소장 판사들을 중심으로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고는 있으나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동의 하에 촬영된 영상 유포’에 대한 법정 최고형인 이번 징역 3년 판결에 대해서도 “피해자 고통에 비해 깃털 같은 형량”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데 고작 3년이냐” 등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이 다수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상담팀장은 “이미 1년 전 나온 종합 대책은 대부분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여주기 대책을 또 내놓은 방식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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