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핑크색 시럽이 발라진 큰 도넛이 어두운 푸른색 우주에 둥실 떠 다니고, 동그란 눈에 주먹코, 길쭉한 입의 동그란 얼굴들이 통통 튄다.
화려한 색채와 발랄한 캐릭터가 화폭을 가득 메우며 시선을 잡아 끈다. ‘살아있는 팝아트의 전설’ 미국의 케니 샤프(60)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케니 샤프, 수퍼팝 유니버스’전이 3일부터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기존 팝아트와 달리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 속에서 작품을 표현하는 ‘초현실주의 팝아트(수퍼팝)’로 유명하다. 회화, 조각, 드로잉, 비디오 등 100여점이 전시됐다.
전시는 전시장 입구부터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요란한 사이키 조명과 신나는 음악으로 관객을 맞는다. 1978년 뉴욕 이스트빌리지 반항아들의 집합소라 불렸던 ‘클럽 57’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곳에서 샤프는 장 미쉘 바스키아, 키스 헤링 등 팝아트계의 거장들과 함께 모여 다양한 실험적인 활동을 펼치면서 주류 예술에 도전하고, 시장경제, 냉전시대 등 사회를 비판했다.
샤프의 작품은 재미있다. 만화에서 볼 법한 캐릭터가 있고, 우주와 행성 등 배경은 공상만화를 연상시킨다. 1979년 백화점 매장에 전시한 ‘죽음의 행성’(Death of Estelle) 시리즈는 대중에게 비로소 자신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뾰족한 선글라스의 여성이 텔레비전이 올려진 피자를 머리 위로 돌리거나, 텔레비전이 떠다니는 우주를 바라보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한다. 행성이 떠 있는 우주 배경으로 주스에 넣는 분말가루(tang) 병에 연결된 스위치를 쥔 손은 익살스럽다. 액체괴물처럼 줄줄 흘러내릴 듯한 모습에 커다란 눈, 코, 입이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블롭(Blobz)’ 시리즈는 작가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유쾌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한 ‘코스믹 카반’(Cosmic Cavern)은 현실에서 벗어나 우주로 탈출하는 공간이다. 의자와 침대, 텔레비전 등 각종 플라스틱 폐기물에 형광 페인트를 칠하고 장식한 환상적인 공간이다. 최근 방한한 샤프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썩지 않는 현대의 문제다”라며 “이것을 주워다 그림을 그리면 썩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미있게 그렸지만 다루는 주제는 무겁다. 1960~70년대 샤프는 경제공황으로 인한 경제침체와 냉전시대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사회를 경험했다. 미국은 자국의 강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달 탐사선, 인공위성 등을 개발해 우주시대를 열었다. 각종 핵전쟁과 환경파괴에 대한 두려움, 1980년대 세계에 확산됐던 에이즈(AIDS) 질병 등은 인류를 위협했다. 이 같은 문제에 직면한 샤프는 텔레비전, 피자, 도넛 등의 대중적인 소재를 이용해 사회문제를 고발한다. 우주에 떠다니는 도넛은 미국 중심의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에 근거한 아메리칸 드림을 표현했다. 독특한 얼굴들의 캐릭터들은 세기말의 혼란과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을 전달한다. 핵폭발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는 핵개발과 전쟁의 위협의 한가운데 있지만 체감하지 못하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샤프는 이 같은 모순적인 방식에 대해 “지금 세계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측면이 너무 많고, 나는 이를 들춰내고 싶다”며 “그래서 우리에겐 더 많은 선의, 더 많은 사랑과 빛, 색채가 필요하고, 그것이 나의 임무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3월3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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