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개월 연속 ‘회복세’라고 낙관했던 경기 진단을 거둬들였다. 계속되는 고용 둔화와 투자 위축, 체감 경기 악화, 무역전쟁 심화 등 국내외 경기 하방 요인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각에선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반도체 수출 등이 꺾일 경우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2일 ‘경제동향(그린북) 10월호‘에서 “최근 우리경제는 수출ㆍ소비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투자ㆍ고용이 부진한 가운데 미중 무역갈등 심화, 국제유가 상승 등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북은 우리 경제의 현 상황을 정부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지를 담은 정부 공식 경기진단 보고서다.
이번 그린북에서 주목되는 것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우리경제를 ‘회복 흐름’ 또는 ‘회복세’라고 표현했던 부분이 빠졌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대신 ‘견조한 흐름’이라는 표현을 넣었고 그것도 수출과 소비에만 국한했다.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의미를 갖는 ‘회복’이란 표현을 삭제함으로써 그 동안의 낙관적인 시각을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이는 투자ㆍ고용에서 ‘부진’하다는 표현을 새로 넣은 점에서도 확인된다.
고광희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과거 경제동향에서 사용한 '회복 흐름'은 경기 전반에 대한 얘기였고 이번에 쓴 '견조'는 수출과 소비에 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과장은 이어 "투자, 고용, 국제유가, 통상갈등 등 하방 위험 요소 상당 부분을 반영하면서 회복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경기 회복을 이끄는 요인보다 위기가 확대되는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는 얘기다.
정부는 가장 위험한 경기 하방 요인으로 고용과 투자를 꼽았다. 그린북에 따르면 9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4만5,000명으로 8개월 연속 10만명 선을 밑도는 등 고용 시장은 둔화세가 이어지고 있다. 기재부는 일자리 여건을 “여전히 엄중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하락 추세다. 8월 설비투자는 운송장비 투자가 증가했지만 기계류 투자가 줄면서 전월보다 1.4% 줄었다. 6개월 연속 내리막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7년 9월∼1998년 6월 10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한 이후 최장기간이다. 건설투자(건설기성)는 건축과 토목 공사 실적이 모두 줄어 전월보다 1.3% 감소했다. 양준호 인천대 교수는 “소비 역시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안정적 기조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경기를 견인하는 국내 요소인 소비와 투자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회복’이라는 표현을 더 이상 고집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는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전환했다거나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다고 보진 않고 있다. 수출 등이 비교적 선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9월 경기동향에서 ‘정체’란 표현을 썼다. 고 과장은 “민간 경제연구원의 침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성장률 전망치 2.9%를 달성하기 위해 정책 노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확장적 재정운용 등을 통해 경제 활력을 높이고 저소득층 일자리ㆍ소득 지원과 소상공인ㆍ자영업자 지원 대책으로 고용 창출과 민생 개선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너무 높은데다 반도체 쏠림도 심하다는 점에서 경기가 갑작스레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출은 대외 환경의 영향이 큰데 미중 충돌에 따른 불확실성은 점점 예측하기 힘든 양상이기 때문이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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