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우리나라 유가증권 시장(코스피)에서 시가 총액이 65조원이나 증발하는 등 아시아 증시가 ‘검은 목요일’을 맞은 것은 미국발 긴축정책이 불러올 약세장(베어마켓)에 대한 공포가 금융시장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미 국채 금리 상승으로 주식에서 채권으로 글로벌 자금 이동이 시작된 데다가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인한 미국 기업들의 실적 악화 우려까지 부각되며 전 세계 증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폭락 수준으로 무너졌다.
이날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증시는 모두 파랗게 질렸다. 코스피 지수는 2011년 9월 23일(-103.11포인트)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아시아 증시의 폭락을 촉발한 것은 전날(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다우지수(-3.15%)와 나스닥지수(-4.08%) 등이 모두 급락한 채 마감된 게 주요인이다.
그 동안 나홀로 강세를 보였던 미 증시마저 돌연 약세로 돌아선 것은 미 연준(연방준비제도ㆍFed)의 9월 기준금리 인상 이후 본격화한 미 국채 금리 상승과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이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미 기준금리 인상 직전인 지난달 26일 3.047%에서 10일에는 3.166%까지 인상됐다. 지난 5일에는 2011년 이후 7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3.228%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 금리 상승은 긴 양적 완화 기간 전 세계에 뿌려져 있던 달러 자산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배경이 된다. 특히 이란 제재 발효를 앞두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배럴당 73.17달러까지 오른 유가는 다시 물가 상승과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 채권 금리가 한 단계 상승함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자동차대출, 학자금대출 금리 등의 인상으로 실물 경제가 받게 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기업들의 실적 둔화 우려가 현실화한 것도 하락세를 부추겼다. 시장에선 무역전쟁에서 파생된 중국 ‘스파이칩’ 논란에 따른 보안관련 비용 증가로 미국 내 정보기술(IT) 기업의 3분기 실적이 급감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오태동 NH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제는 미국 주식시장마저 더 이상 ‘안전 자산’이 아니란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채권금리와 유가, 신흥국 금융시장 안정 등 증시 급락을 불러왔던 변수들이 개선돼야 증시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하이종합지수가 4년만에 2,500포인트대까지 밀린 중국 시장의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미중 갈등은 격화되고 있고 위안화 가치는 지속적 약세를 보이고 있다. 루이 테 홍콩 VC자산운용 상무는 이날 블룸버그에 “부정적 심리가 긍정적 요인을 짓누르고 있어 상하이 지수는 더 떨어질 수도 있다”며 “아직은 터널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코스피 기준 2,100포인트 선에서 바닥을 찾을 것이란 예상과 당분간 반등을 노리기 힘들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미중 무역전쟁이 단기간 해소될 가능성이 낮은데다 시장 금리 3% 시대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수년간 선진국 증시 상세는 기술주가 주도했는데 이들마저 금리 상승에 따라 실적이 약화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성장 동력은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 경제와 기업이 새로운 영역(3%대)에 진입한 금리를 극복할 수 있을 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셀코리아 순매도 행렬이 얼마나 이어질 지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외국인은 8거래일 째 코스피에서 무려 2조3,000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의 순매도로는 2016년1월7~26일 14거래일간 2조9,800억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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