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정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기존 러시아 정교회와 분리된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승인을 검토하자, 정교회 가운데 최대 계파인 러시아 정교회가 이에 반발해 총대주교청과의 관계 단절을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치 대립이 이제는 1,000년전 동ㆍ서 교회 대분열에 버금가는 대규모 종교 분열까지 낳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독일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스 1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세계 총대주교회의에서 러시아 정교회와 분리된 우크라이나 독립 교회를 공식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금까지 세계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 산하 우크라이나 자치교회만을 공식 인정해 왔다. 바르톨로메오스 1세는 이미 9월 23일 우크라이나 교회의 독립을 인정하는 교령(토모스)을 내릴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주교 2명을 파견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수장인 키릴 모스크바 총대주교는 지난 8월 터키 이스탄불을 직접 찾아가 설득했지만 바르톨로메오스 1세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 결국 9월 14일 러시아 정교회는 공식 성명을 통해 바르톨로메오스 1세를 비판하며 그의 이름을 기도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일각에서도 바르톨로메오스 1세를 ‘서방과 바티칸의 첩자’로 취급하는 악성 선전이 나오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교회를 산하에 두려는 데는 정치적 목적이 더 크다는 게 우크라이나 쪽 시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정교회를 적극 끌어들였다.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 대통령의 대표적 정치 동맹이자 서방을 향한 대화 창구 중 하나다. 현재 러시아 정교회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구소련 소속 국가 내 정교회 대부분을 관할하고 있다.
물론 기존에도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된 정교회가 2개 있었지만 세력이 약했다. 우크라이나인 대부분은 러시아 정교회와 독립 정교회를 딱히 구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림 반도가 러시아로 병합되고 내전이 심화하면서, 우크라이나 교회 독립에 대한 열망도 커졌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019년 대선을 앞두고 교회 독립 지원 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미국 국제공화연구소(IRI)가 발표한 6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 가운데 정교회 독립을 찬성하는 응답자는 39%로 반대 29%를 앞섰다.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지만 비판적 성향이 강한 성직자 안드레이 쿠라예프는 도이체벨레에 “우크라이나 특정 정치인이나 교인뿐 아니라 전 국민이 대체로 교회 독립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러시아 정교회가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 정교회에 남는 것을 선호하는 우크라이나 신도들도 존재하고, 조지아 정교회 등 일부 교회들도 우크라이나 독립교회를 인정하는 데 미온적이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이 역사적 권위를 인정받고는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총대주교청과 러시아 정교회 사이 잘 드러나지 않던 알력 다툼이 표면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는 정치뿐 아니라 종교 전쟁의 최전선으로 전락할 수도 있게 된다. 독일 동유럽국제연구소의 정교회 전문가 레기나 엘스너는 “현재 위기가 교회 분열을 유발할 수 있다”라며 “특히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모든 이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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