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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미인 얼굴이 얽은 까닭은... 문학 속 감염병, 그 비극의 집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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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미인 얼굴이 얽은 까닭은... 문학 속 감염병, 그 비극의 집행자

입력
2018.10.12 04:40
수정
2018.10.12 14: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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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인티드 베일’(2006)의 한 장면. 에드워드 노튼이 맡은 주인공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메이탄푸로 간다. 환자 진료부터 안전한 상수 확보까지, 감염병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지만, 콜레라에 걸려 죽는다. 이모션픽쳐스 제공
영화 ‘페인티드 베일’(2006)의 한 장면. 에드워드 노튼이 맡은 주인공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메이탄푸로 간다. 환자 진료부터 안전한 상수 확보까지, 감염병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지만, 콜레라에 걸려 죽는다. 이모션픽쳐스 제공

비극을 만나야 하는 건 문학 속 인물들의 숙명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아프다. 청순하고 착한 소녀는 백혈병을 앓고, 팔자 센 나는 말기 암까지 선고받고, 인연 끊고 산 엄마는 치매에 걸려 나타나 마음을 들쑤신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하는 법. 위생은 엉망이고 의학은 덜 발달했던 근대 이전의 문학엔 감염병이 비극의 근원이 되곤 했다. 감염병은 어찌 보면 문학적인 병이다. 우선 고통이 오래가면서 증상이 다양하다. 작가가 묘사할 게 많다는 뜻이다. 죽음 가까이 가는 경우가 많아 그야말로 극적이기도 하다.

최영화(49) 아주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병으로 문학을 읽고 썼다. 아주대 의료원 소식지에 5년 넘게 연재한 글을 모아 ‘감염된 독서: 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를 냈다. 흑사병,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결핵성 수막염까지, 각종 병명이 나온다고 겁먹지 않아도 된다.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의 눈 높이에 맞춰 썼다.

윌리엄 서머싯 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페인티드 베일’(2006). 주인공 월터는 최 교수와 같은 감염병 의사다. 철없는 아내 키티는 불륜을 저지른다. 월터가 키티에게 내린 벌은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으로 함께 가는 것. 월터는 콜레라에 걸려 죽고, 키티는 인생에 눈뜬다. 월터 역을 맡은 에드워드 노튼의, 콜레라에 걸리고도 잘생긴 얼굴에 관객들이 애통해할 때, 최 교수는 “교과서에서 보는 콜레라 환자의 얼굴 그 자체”임을 알아본다. 작품의 의학적 고증이 충실한 건 몸이 의사였던 덕분이다.

소설가 이태준(1904~?)은 병을 문학처럼 앓았다. 산문집 ‘무서록’에서 “하 생활이 단조로울 때는 앓기라도 좀 했으면 하는 때가 있다”며 앓고 싶은 병으로 학질(말라리아)을 꼽는다. 하루 걸러 열이 절절 끓는 게 학질의 증상. “나의 체험으로는 어느 병보다도 통쾌스러운, 일종의 스포츠미를 가진” 병이라면서 “그 소낙비 같은 변조와 정열!”을 찬탄한다.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서간소설 ‘위험한 관계’의 후작 부인은 사악한 절세미인이다. 결말에서 천연두에 걸린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권선징악의 집행자인 셈. “종말은 죽음이 아니었다. 완쾌하긴 했으나 얼굴이 끔찍하게 변했으며, 게다가 애꾸눈이 되고 말았다.” 최 교수는 덧붙인다. “천연두의 합병증으로는 실명이 대표적이다.”

최영화 아주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최영화 아주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최 교수의 의사 본능은 쉬지 않는다. 문학 텍스트 속 인물의 병세를 따져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고민한다. 중국 소설가 라오서가 쓴 ‘낙타 샹즈’의 주인공 샹즈는 임질에 걸린다. 10원이라는 거액을 써 약을 사 먹고도 병이 낫지 않는다. “무슨 약인지 소설에 안 나오지만, 항생제는 아니다. 항생제라면 단박에 좋아지니까.” 최 교수의 처방이다. ‘하루 이틀 열이 높으나 의식이 분명하다가, 의식이 조금씩 혼미해지고, 끝내 마비 증세가 왔다.’ 죽음에 임박한 진시황의 증상이다. “결핵성 수막염의 1~3단계 진행 소견이다.” 삼국지의 유비는 이질로 죽는다. “세균성 이질인지 아메바성 이질인지 감별해야 하지만 자신이 없다.”

최 교수는 문학과 의학으로 삶을 깊이 읽는다. 바이러스는 진화하고, 항생제는 무력해지고, 세계는 하나가 됐다. 감염병 의사에겐 최악의 조건이다. 최 교수의 삶도 수월해질 줄 모른다. 11일 전화로 만난 그는 “죽을 것 같아 글을 썼다. 글은 치유였다”고 했다. 그는 문학도가 되고 싶었다. 어쩌다 의사가 됐다. 20, 30대엔 책 펴 볼 겨를이 없었다. 그가 학창 시절 읽은 문고판 소설이 책에 많이 나오는 이유다.

최 교수가 죽음에 대해 쓴 글. “희망을 아무 때나 뿌려. 나쁜 자식. 나를 가지고 놀고 있어. (…) 존귀하게 돌아가게 해다오. 이 시간이 너무 길다. (…) 나쁜 자식. 예측 가능하게만 해달라고, 설명 가능한 병만 보내달라고 했었다. 한 방 비수를 꽂아도 시원찮을 놈.” 그는 죽음에도 말할 기회를 준다. “나는 숙명대로 일하는 자다.” 생로병사 앞에 겸손할 것, 최 교수가 도달한 진리일까. 항생제 내성 문제를 걱정하며 고백한다. “저는 정말 아는 게 적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염된 독서

최영화 지음

글항아리 발행∙308쪽∙1만5,000원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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