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캔자스시티 감독ㆍ2008~2010)와 일본프로야구(닛폰햄 감독ㆍ2003~2007)에서 지도력을 발휘한 트레이 힐만(55) SK 감독이 부임 2년 차에 팀을 정규시즌 2위에 올려놓았다. 지난해 5위로 가을 야구 막차를 타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1경기(NC 5-10 패) 만에 물러났던 아쉬움을 털어낼 기회를 잡았다. SK가 2위로 시즌을 마친 건 2012년 이후 6년 만이다.
10일 잠실 두산전 승리로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거머쥔 힐만 감독은 “일단 2위로 마쳐 만족스럽다”며 “극적으로 이긴 경기, 아쉽게 놓친 경기가 수 없이 떠오른다. 아직까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2016년 말 SK의 첫 외국인 감독으로 취임 기자회견을 할 때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내가 구상했던 팀 구조 계획이 잘 실행되고 적용됐다”고 덧붙였다.
2016년 11월 SK의 6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그는 장타력을 갖춘 타선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긴 호흡으로 마운드를 운용했다. 또 ‘에이스’ 김광현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후 복귀한 올 시즌 몸 상태와 소화 이닝, 투구 수 등을 철저히 관리해 성공적인 재기를 이끌었다. 김광현은 올해 큰 부상 없이 11승8패 평균자책점 2.98로 시즌을 무사히 완주했다.
언제, 어떻게 탈이 날지 모르는 변수 속에 선발진을 무리 없이 돌린 힐만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트레이닝 파트, 프런트가 다 같이 협조한 덕분에 김광현이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며 “시즌 전 관리 차원에서 김광현을 뺏을 때 대체 선발이나 불펜 운영에 대한 계획을 철저히 한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선발과 중간을 오간 김태훈이 큰 역할을 해줬다”고 밝혔다.
평소 힐만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존중(Respect)’이다. 선수들, 코칭스태프를 존중하며 신뢰 관계를 쌓고 그 안에서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데 중점을 둔다. 이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더위에도 경기 전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지고,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며 고민을 나누려 노력한다. 그는 선수들과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땐 “지금 나는 힐만도 SK 감독도 아닌 ‘오토 웨이비(Otto Waby)’란 사람이다”라며 가상의 자아를 내세우곤 한다. 그가 설명한 오토 웨이비는 “재미 있는 개그를 하고, 즐겁게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인물”이다.
힐만 감독은 1년 전 아픔을 잊지 않고 있다. 당시 SK는 NC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마운드가 일찌감치 무너지며 준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내줬다. 힐만 감독은 “한 경기 만에 끝난 게 너무 실망스러워 이번 스프링캠프 때부터 더욱 신경 써서 준비했다”며 “투수에겐 볼넷을 줄이고 상대 타자의 좋지 않은 콘택트를 유도하는 효율적인 피칭을 주문했고 타자 쪽은 어떤 투구에 스윙을 선택해야 하는지, 삼진을 줄이기 위한 2스트라이크 이후 접근법을 보완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2006년 니폰햄을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려놓고, 2014년 캔자스시티가 우승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진 그는 지난 4년간 중위권에만 머문 SK를 상위권으로 끌어올려 SK 팬들로부터 “남아달라”는 구애를 받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에선 LA 에인절스의 차기 사령탑 후보로 힐만을 거론하고 있다. 힐만 감독은 “일할 수 있는 자체로 행복하고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에 감사하다”면서 “SK와 한국 야구를 사랑한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보다 당장의 내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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