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무은(事師無隱ㆍ스승을 섬기는데 의문을 숨길 수 없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이 한 말로, 배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질문을 통해 개념은 더 명확해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
질의응답 형식을 빌려 미술사의 실체를 알아보려는 책이 나왔다. 미술사학자 홍지석이 질문하고, 한국근대미술사학의 대가라 불리는 최열이 답했다. ‘미술사란 무엇인가’ ‘언제부터 한국 미술의 근대는 시작됐나’ ‘역사와 미술의 관계는 어떠한가’ 등 미술사의 연원을 알아보는 질문부터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 ‘작품을 보는 심미안은 어떻게 기를까’ ‘우리에게 근대미술관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일까’ 같이 누구나 한번쯤 궁금했을 만한 것들까지 친절하게 묻고, 상세하게 답했다.
40여년 미술사를 공부한 대가가 답해주지만 사실 책에 정해진 답은 없다. 가령 좋은 작품에 대한 기준에 대해 홍지석은 ‘새로운 시대를 연 작품’이라고 보고, 최열은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균형이 잡힌 작품’이라고 밝힌다. 직접 묻진 않지만, 책은 독자에게 넌지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두 학자의 질문과 답 틈새로 독자가 개입할 여지를 남겨뒀다. 홍지석이 최열에게 답을 구하지만 진정한 답은 책을 든 미술사 입문자가 생각해봐야 한다. 책은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독자 스스로가 자신만의 기준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울 뿐이다.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최열ㆍ홍지석 지음
혜화1117 발행ㆍ300쪽ㆍ1만8,000원
두 학자는 한국에서 미술사 연구에 뛰어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안다. 책은 미술사 공부를 시작하려는 후배가 조금이라도 덜 수고스럽기를 바라는 마음이 따뜻하게 담겨 있다.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현실적 충고부터 자신의 미술사 공부가 어땠는지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질의응답에 녹아 공감대를 키운다. 예컨대 미술사라는, 우아하고 고상할 것만 같은 학문이 사실 전국의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을 샅샅이 훑는 막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미술사를 공부한다’는 최열은 미술사 입문자에게 끝으로 직접 묻는다. ‘왜 미술사를 공부하려 합니까’라고. 이 질문은 미술사를 넘어선다. 아마도 지금, 여기,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과 공부, 인생에 대해 던져봐야 하는 보편적인 질문이 아닐까 싶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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