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리더] 하치고 다카히로 혼다 CEO

하치고 다카히로 혼다 CEO.
혼다 픽업트럭 릿지라인.

“판매량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혁신의 기본으로 돌아가겠다.”

일본 자동차그룹 혼다의 하치고 다카히로(八鄕隆弘)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15년 6월 취임하면서 밝힌 다짐이다. 당시 혼다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다카다의 에어백 결함 문제로 2,200만대가 넘는 차를 리콜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엔화 약세로 일본 내 자동차 경쟁업체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실적을 올리는 동안 혼다는 리콜로 순이익이 8.9% 감소했다. 하치고는 전임 CEO인 이토 다카노부(伊東孝紳)가 자동차 글로벌 판매량 확대에 집중하면서 혼다의 내실을 갉아먹었다고 판단했다. 하치고는 다카노부가 내세웠던 연간 판매량 600만대 달성 목표를 폐기하고 규모보다 품질 우선주의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품질 향상을 통한 이미지 쇄신에 주력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치고 CEO가 이끄는 혼다는 현재 순항 중이다. 2015년 아우디ㆍ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로 인한 반사이익을 발판으로 취임 당시 2015년 430만대에 머무르던 자동차 글로벌 판매량은 지난해 500만대를 돌파했다. 다카노부의 2016년 기준 연간 판매량 600만대 목표를 포기하는 대신 내실을 다지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혼다의 강점인 모터사이클 분야에선 지난 2016년 글로벌 판매량 1,700만대를 달성했고, 같은 해 혼다 픽업트럭인 릿지라인이 미국의 ‘올해의 픽업트럭’에 꼽히는 등 양적ㆍ질적 성장 모두를 이뤄냈다. 하치고는 최근 인터뷰에서 “판매량이나 수치와 같은 목표를 내걸기보다 ‘꿈과 감동을 주는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겠다”며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향후 자율주행과 새로운 에너지 솔루션 등을 개발하는 게 최우선순위”라고 말했다.

 ◇혼다의 구원투수 하치고 

하치고는 1982년 섀시 제작 부문 엔지니어로 혼다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CEO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혼다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개발 책임자와 하이브리드 차 리튬이온전지 구매 책임자 등을 거쳤고 북미와 유럽, 중국 등의 시장을 총괄한 해외통으로도 꼽힌다. 혼다에 한평생 몸담으며 다양한 사업 전반을 꿰뚫고 있는 ‘혼다맨’이다. 혼다에선 ‘기술’을 최고의 모토로 삼은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의 유지에 따라 혼다기술연구소 소장 출신이 그간 CEO로 발탁돼왔다. 하지만 다카다 에어백으로 벼랑 끝으로 몰리면서 혼다는 더 이상 오랜 관행을 고수할 수 없었다. 구원투수로 하치고 만한 인물이 없었다.

2009년부터 혼다 CEO를 맡은 다카노부는 연간 판매량 600만대 달성을 목표로 임기 동안 멕시코, 브라질, 태국,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에 지역 전용차 생산 공장을 설립, 혼다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회사가 위기에 몰리자 성장 속에 가려져 있던 위험요소들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글로벌 생산능력 과잉이었다. 2015년 당시 연간 생산 12만대 규모의 영국 공장은 일감이 없어 휴업에 들어갔고, 새로 설립한 브라질 제2공장은 가동 시기도 정해지지 않은 채 표류했다.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등에 있는 공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치고가 “양적 성장에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던 숨은 이유가 여기 있다.

다카노부의 글로벌 생산공장 확대 노선은 다른 부작용도 낳았다. 혼다 모델 현지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개발이나 생산 시스템이 지역별로 제각각 운영되는 건 물론, 글로벌 판매량 확대에만 몰두해, 지역 소비자들의 입맛만 맞추다 보니 혼다의 개성이 희미해진 것이다. 혼다 내부에선 “글로벌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소가 각 지역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면서 어느 나라에서도 베스트가 아닌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생산ㆍ개발ㆍ판매 세 분야에서 모두 경쟁력이 하락하면서 혼다의 위기는 깊어졌다. 여기에 다카다 에어백 리콜 사태가 직격탄을 날렸다.

이토 다카노부 혼다 전 CEO.
국내에 판매 중인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
 ◇하치고 “외형보단 지속가능 성장” 

하치고는 지난해 일본 내 공장 중 하나인 사마야시 공장을 2020년까지 폐쇄해 자국 생산량을 4분의 1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사마야시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106만대에 달한다. 글로벌 생산 과잉에 시달리는 만큼 공장 축소에 나선 것이다. 하치고는 또한 지난해 혼다의 미래 전략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판매제품 중 3분의 2 이상을 하이브리드카(HEV), 전기차(EV), 수소연료전지차(FCEV) 등 친환경차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현재 혼다의 라인업 중 5%에 불과한 전기차 비중을 대폭 끌어올리려는 전략이다. 사마야시 공장이 폐쇄된 후 그곳 근로자들은 인근 요리 공장에 통합되는데, 요리 공장은 혼다에서 2022년 이후 전기차를 비롯해 신기술 차를 개발ㆍ제조하는 역할을 맡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비효율적 공장 생산성을 개선하는 한편 유휴 인력을 적극적으로 신 사업에 배치하려는 하치고의 포석이 드러난다. 하치고는 이와 관련 “향후 10년간 혼다의 연간 글로벌 생산 규모는 550만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외형 성장보단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혼다를 정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치고는 2025년까지 완전자율주행인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혼다는 2016년 구글 웨이모와 자율주행기술 공동 개발에 나섰고, 2020년 도쿄올림픽 개막에 맞춰 고속도로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하치고는 지난해 연구개발(R&D) 비용으로만 7,500억엔(약 7조6,300억원)을 투자하는 결단을 내렸다. 하치고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자동화나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의 개발 영역을 점차 확장해나갈 것”이라며 “혼다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충분히 알고 있고 다만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치고는 최근 다카다 에어백 사태로 실추된 혼다의 브랜드 이미지 회복에도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내년 상반기 일본에 출시되는 소형 비즈니스 제트기 ‘혼다제트 엘리트’ 판매다. 소형 비즈니스 제트기는 미국 유럽 중국 등의 시장에선 수요가 많지만 일본에선 사치품 이미지가 강해 시장이 거의 형성돼 있지 않다.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은 혼다가 제트기 불모지나 다름없는 일본 시장 진출을 선언한 이유에 대해 “혼다에 최근 소비자들의 눈을 끌 만한 획기적인 제품이 많지 않다”면서 “이번 결정은 브랜드 이미지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하치고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혼다가 이런 제품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고객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혼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
 ◇혼다의 정신, 창업자 소이치로 

하치고가 혼다를 마음껏 지휘할 수 있는 배경엔 여전히 혼다에는 소이치로의 기업 정신이 깃들여 있어서다. 소이치로가 1946년에 설립한 혼다에는 여태껏 창업자인 소이치로 자신을 제외하곤 ‘혼다’ 성을 가진 CEO가 단 한 명도 없다. 소이치로는 1973년 회장직에서 은퇴하면서 아들 및 친인척이 등용되는 길을 아예 차단했다. “보통 기업들이 아들이나 친척에게 회사를 물려주려 한다. 하지만 회사는 개인이 아닌 모두의 것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면 회사는 곧 망한다.” 기업이 사유물이 됐을 때 실패한다는 소이치로의 지론은 큰 위기를 겪은 혼다가 신속하게 CEO를 교체하고, 발 빠르게 변화하며 생존하는 데 힘이 됐다.

혼다에서는 유난히 ‘기술’이 강조된다. 역대 CEO가 모두 공대 출신에 혼다기술연구소 소장 출신이었던 점도 소이치로가 만든 전통이다. 소이치로는 15세가 되던 1921년 도쿄의 한 자동차 정비소에서 낸 직원 공고를 보고 고향이던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견습생으로 6년간 자동차 엔진을 수리했고 1928년 고향으로 돌아와 첫 자동차 정비소를 열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은 혼다의 출발점이었다. 소이치로는 이후 1937년 ‘오카이세이키’라는 자동차 부품공장을 차렸고, 1946년엔 직원 12명을 모아 혼다기술연구소를 열었다. 고물 자전거에 소형 엔진을 달아 판매한 모터사이클이 큰 인기를 끌었고 1948년 혼다의 전신인 혼다기연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됐다.

혼다의 초창기 베스트셀러는 1941년 제작된 모터사이클 ‘드림호’였다. 소이치로가 국숫집 배달원인 형이 왼손에 핸들을 잡고 오른손에 배달통을 쥘 수 있도록, 왼쪽에 변속기를 달아 만든 모터사이클은 우리나라에도 유행하면서 혼다의 성공을 이끌었다. 소이치로는 모터사이클 개발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 분야에 도전, 1969년 미국에 혼다 브랜드를 단 자동차를 판매하는 등 1973년 은퇴 전까지 혼다를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소이치로의 기술자로서의 면모는 그의 자서전 ‘내 손이 말한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이치로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그린 ‘나의 손’이라는 그림을 설명했다. 그 그림 속에서 소이치로의 손은 망치에 맞고 깎여 나가고 손톱이 빠져 있다. 소이치로는 “어릴 때부터 오른손으로 일하고 왼손은 그것을 받쳤다”며 “나의 왼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은 오른손보다 1㎝ 정도 짧다. 내 왼손은 평생 그렇게 잘 버텨냈다”고 회고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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